논마다 나락도 다 거둬들였다. 거기다가 보리 갈고, 갓 갈아 두었다. 고구마도 캤다. 거기다가 또 밭보리 뿌려두었다. 벌써 마늘밭에는 제법 푸른 것이 많이 솟아 나왔다. 찬바람 솔솔 부는 늦가을에도 땅은 쉬지 않고 생명을 품고, 내고 한다. 돌지 않는 건 돈 뿐인가보다. 고구마가 완전히 똥값이라 캐는 당일날 아줌마 인건비도 맘대로 쓰지 못해 며칠씩 식구들이 추운 밭에서 몸을 웅크리고 일했다. 마늘은 더하다. 중국산 마늘 수입물량과 가격으로 국산 마늘은 장난아닐텐데 또 마늘을 심었다. 밭에 심을 것이 없다.그래도 시설하우스나 바닷일을 하지않는 우리집은 조금 한가해졌다. 아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보면 동네 골목마다 할머니들이 손자들 자전거를 뒤에서 미느라 바쁘다. 네 살박이 재혁이는 우리 아기 친구다. 시골에 처음 올 때는 하얗더니 지금은 완전히 새카맣고 씩씩하게 타버렸다. 서울사는 딸내미 내외가 둘다 직장생활 한다고 맡긴 지 1년이 다 돼간다. 도시 사람들, 아이만 맡기는 게 아니다. 밑에 집 할아버지는 아들 사업이 안됐다며 논 팔아 줄려고 한참 흥정중이시다. 도시 사람들 뒷바라지 하는 가난한 시골사람들.우리 신랑도 차남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농사지으며 시골에 산다. 왠일인지 우리 시골에는 전부 둘째 며느리, 막내 며느리들이 부모님과 같이 산다. 난 그것이 장남위주의 가부장제 사회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집도 그렇지만 장남은 손에 흙 묻히기도 아까워 공부시켜서 도시로 보내는 게 집안일인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차남인 우리 신랑의 어렸을적부터의 별명은 “바가지”다. 어디서든 일에 써먹을 때가 있다는 바가지….올 봄에는 가뭄, 여름에는 태풍으로 처참했던 논에서 나락을 다 거둬들였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며 고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그 수고가 대견한 일 아닌가. 차곡차곡 수매하기 위해 창고에 쌓아두었다. 그 중에 많은 가마는 방앗간에서 찧어 도시에 사는 식구들에게 보내진다. 어디 택배로 보내지는 게 쌀 뿐이겠는가.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는지. 시골사람들 고생해서 뒷바라지하는 일을. 도시에 나가 사는 식구들도, 국가를 운영하는데 있어서도 말이다. 이제 각 조합에서 무슨 무슨 자금이며, 이자며 부채 상환 독촉에 직원들 다 동원돼서 동네마다 야단일 것이다. 1년 농약값, 기계값 장부들고 설칠 것이다. 지겹다.
한국농어민신문webmaster@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