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런 돌봄과 모심…모두의 가슴을 적시다

산골마을에 봄이 시나브로 찾아오던 13일. 장수군 장계면 장계문예복지관이 사람 내음으로 가득했다. 농부 전희식과 그 어머니 김정임 님의 새 책 ‘엄마하고 나하고’의 출판기념잔치가 열려서다.

장계 문예복지관에서 열린 전희식 씨의 ‘엄마하고 나하고’ 출판기념잔치에는 인간을 사랑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축하했다. 사진은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는 저자 전희식씨.

이날 행사는 일반적인 출판기념회와는 다르게 상석이 따로 없이 참석자들이 마주 앉아 어우러지도록 해 놓았고, 전희식의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길놀이 풍물을 이끌어 분위기를 돋웠다. 김정임님과 전희식의 일상을 담은 두 편의 영상물도 상영됐다.   

지난해 일제고사 때 현장체험학습을 소신껏 승인해 유명해진 김인봉 장수중학교 교장은 “어머니를 한 여자로, 한 인간으로 알아가면서 이를 보편적인 인류애로 승화시킨데 놀랐다”며 “모든 노인들이 존엄한 인간으로 대접 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오랜 친구로 행사장을 찾은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시절부터 동지관계인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어머니 김정임 여사와의 대화의 산물이자, 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그린 이 책에서 배울 것이 많다”며 “시류와 상식을 중시하면서도 세속적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당당하면서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전희식을 소개했다. 

전희식은 이 글을 본보에 2년 반 동안 연재하면서 “마감시간은 촉박하고 글은 쓰여지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끙끙댈 때 어머니가 무엇인가를 꼭 시켰고, 신통하게도 그 일을 해결하다 보면 거기서 해답이 나왔다”고 책의 출간을 어머니의 공으로 돌렸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김정임님이 식구들과 생활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사진전시회가 열렸다. 또 지역 서예가인 이필재씨의 서예 시연과 그 세 딸의 국악공연, 김일한 가막리 이장(교직 경력 40년)의 판소리 공연도 관심을 끌었다. 

전희식의 후배이자 장수 하늘소마을 주민인 문원산 씨가 사회를 맡아 땀을 흘렸고, 김자연 전주대 교수가 서평과 시낭송을 해줬다. 전희식이 자문위원으로 있는 전북녹색연합, 강화 밝은 마을, 정용수 이사장을 비롯한 귀농운동본부 사람들, 장두석 민족생활의학회 회장도 찾아 왔다.  

전희식은 마지막 순서에서 좌중에게 ‘어머님 은혜’ 노래를 같이 부르자했는데, 많은 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흐느끼기도 했다. 세상 모든 엄마와 자식들에게 농부 전희식이 전하는 감동메시지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파고드는 순간이었다.  펴낸 곳 한국농어민신문, 값 12000원.

전문가 리뷰 / 김자연 전주대학교 교수·문학박사

책 갈피마다 숨은 감동 뭉클


다소 매운 3월이지만, 양지쪽을 살펴보면 푸릇한 싹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미나리, 쑥, 냉이 등. 어디 그 뿐이랴! 산수유 매화도 여기저기서 꽃망울을 툭툭 터트리고 있다. 봄에 핀 이 모든 것들은 지난 겨울과, 어둠과 비와 햇살, 바람에 젖어 비로소 제 존재 가치를 얻은 것들이다. 전희식의 ‘엄마하고 나하고’ 역시 4년여의 세월 속에 치매어머니와 저자의 생각들이 젖어 피어올린 진솔한 삶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어머니의 몸을 빌리지 않고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낳고 길러 준 어머니에 대한 기본적 예의마저 저버리며 살고 있는 게 현재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진정 무엇을 위해서인가? 이 책은 무엇을 위해 달리는 지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지금 내가 누구인지, 삶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잠깐 멈추어 서서 주변을 살펴보게 만든다.

이 책 갈피갈피에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섬기고 모시면 오히려 그 자신이 행복해지고 삶이 온전해 질 수 있다는 동학 정신과 이 세상 모든 것이 귀하다는 생명사상이 흐르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기가 생각한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용기와 향기로운 휴머니티를 함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어제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 상황에 대해 저자는 “어제 내가 한 선행을 잊으라는 것, 어제 내가 저질렀던 실수에 더 이상 상심하지 말라는 것, 어제는 없다는 것, 내일도 모래도 다 허상이요, 실상이 아니라는 것, 다만 지금 여기가 온전한 삶이라는 것,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내 미래라는 것”(33~34쪽)이라는 깨달음을 얻어 내고 있다. 축축하게 젖은 옷을 벗지 못하고 누운 채 아들의 눈치만 보고 전전긍긍하는 어머니에게 ‘꿈에 오줌을 누면 꼭 옷에 오줌을 눈다’고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이러한 배려는 사람을 귀히 여기는 섬김과 모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자신을 있게 하고 먹여 살리는 것이 이웃이요, 나라요, 그것들이 자기의 하느님이라고까지 확대된다.

치매 어머니 때문에 자신의 삶이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한 인간을 온전하게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더 풍요로워졌다는 통찰이 가슴 뜨끔하면서도 뭉클하게 와 닿는다. 문학의 존재가 삶의 진실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라 할 때, 전희식의 ‘엄마하고 나하고’는 있는 그대로 삶의 여정을 통해 잔잔한 울림과 향기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값지고 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어진 삶을 껴안고 그 안에 푹 젖어 피어올린 ‘엄마하고 나하고’를 통해 향기로운 섬김의 꽃을 피워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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