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댁의 건강밥상

산골짜기 우리집 앞에는 개울이 흐른다. 이 개울을 경계로 행정구역이 갈라진다. 개울 이쪽의 집과 논은 소천면이고 개울 건너 큰 밭은 재산면이다. 거리로 치면 재산 쪽이 훨씬 가깝지만, 대부분의 행정은 소천면 관할이다. 소천 쪽으로는 제일 가까운 마을도 산길을 10킬로는 가야 한다. 이렇게 외따로 떨어져 있으니 우체부 아저씨들과 이장님께 몹시 미안하다. 특히 이장님은 눈이나 비가 내린 날이면 어김없이 전화를 주시고, 작은 일까지 늘 챙겨주시니 고맙고 송구하다.

며칠 전에 소천의 남회룡리 윷놀이가 열렸다. 마침 전날 눈이 제법 내려 마을까지 가는 산길에서 차가 여러 번 미끄러졌다. 그렇다 해도 양쪽에 늘어선 키 큰 낙엽송과 춘양목이 눈을 얹고 있는 모습은 한숨이 나오게 아름다웠다. 눈 덮인 마을은 더욱 평화롭고 아늑했다. 회관에 들어서니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계셨다. 신참에다 젊기까지 하니, 나는 얼른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주방은 조금 쓸쓸했다. 그 사이 관절염으로 무릎을 수술한 이가 나까지 셋. 무릎을 구부리지 못해 뻗정다리를 한 채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술 분위기도 지난해만 훨씬 못했다. 그때는 모두들 막걸리든 맥주든 따르는 족족 단숨에 들이켰는데. 그래도 새로 귀농한 이들이 셋이나 있어 뿌듯했다. 하우스에서 크기 시작하는 고추 모종에서부터 무릎 관절에 좋은 운동법까지 오십 줄의 “젊은” 아주머니들의 이야기가 다채로웠다.

올 대보름 메인 메뉴는 회덮밥. 울진 바다가 가까우니 골 깊은 산골에서 바다생선을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방어, 붕장어, 가자미, 쥐치에 광어까지 종류도 색깔도 다양했다. 고명으로 깻잎이며 오이를 써는 마을 선배들 앞에서 나는 기가 죽었다. 어찌 그리 가늘고 일정하게 채를 써는지. 매운탕도 솜씨 좋은 이가 맡았고 그 중 쉬워 보이는 마늘 찧는 일은 얼마 전에 귀농한 젊은 아낙이 차지했다. 나는 제일 만만한 설거지를 맡았다.

신명 많은 어르신들이 계셔 윷놀이 판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도 못 놓는 윷을 놓았다. 윷도 있고 모도 있건만 어찌 그리 번번이 도와 개만 나오는지. 그래도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안다고, 내가 이겼다. 보름날 놀이에서는 남정네가 져 주는 것이 도리이다. 아낙네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지 않는가. 남편도 졌다니, 우리집 풍년은 따 논 당상이다. 마을로 봐서도 여자들이 거지반 이겼으니, 올 가을 남회룡리에서는 풍년가가 드높이 울려 퍼지리라.

양성댁 강분석
앙성댁 강분석(52)씨는 1997년 봄 서울에서 충북 충주시 양성면으로 귀농, 지금은 경북 봉화로 이사해 귀농 12년차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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