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댁의 건강밥상

설날을 며칠 앞두고 눈이 계속 내렸다. 추운 날씨에 눈이 그대로 쌓이니 산골은 금방 아름다운 풍경화가 되었다.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남편이 장을 보러 가자고 했다. 

조심한다고 했건만 자동차는 고갯길에서 여러 번 미끄러졌다. 영주까지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춘양에서 장을 보기로 했다. 차례상에 놓을 제물을 먼저 사고 식구들 음식 장을 보려는데 남편이 말렸다. 설날까지 눈이 계속 온다니 식구들이 내려오기 어려울 것 같단다. 운전하는데 신경이 엄청 쓰였던 모양이다. 나는 착한 아내처럼 남편 말에 따랐다. 쌓인 눈도 그렇고, 며칠 전부터 몸살 기운이 있어 꾀가 났던 것이다. 그래도 설인데, 섭섭한 마음에 남편이 잘한다는 음식점에서 감자탕을 포장해 달랬다.

설 이틀 전, 산골은 정강이 위까지 눈이 쌓였다. 식구들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연락을 하려는데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댔다. 밖을 보니 아랫마을의 전, 현직 반장님이 트렉터로 눈을 밀며 올라오고 있었다. 이 눈과 이 추위에, 고맙기 그지 없었다. 얼마 후 눈 치우고 내려오는 이들의 코가 빨개져 있었다. 눈은 두 분이 치웠건만, 그날 밤 나는 죽도록 몸살을 앓았다.

설 전날, 아침에 일어나니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몸이 쑤셨다.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후들거리는 다리보다 더 허둥대는 것은 마음이었다. 식구들 음식이 걱정이었다. 냉장고를 아무리 뒤져도 뾰족한 게 없었다. 막히고 미끄러운 길을 어렵게 내려올 분들을 생각하니 식은땀이 났다.

게다가 시어머니 생각은 왜 그렇게 나는지. 명절이면 어머니는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하나 챙겨서 만드셨다. 북어포 구이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모님 생각이 간절한 날인데, 빈약한 상 앞에서 어머니의 부재를 더욱 뼈저리게 느낄 식구들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나는 냉장고에 기대 서서 어머니의 음식을 떠올렸다. 늘 빠지지 않던 것이 갈비와 잡채였다. 갈비야 어쩔 수 없으니, 잡채를 만들기로 했다. 찬장을 뒤지니 다행히 당면 남은 것이 있었다. 있는 야채를 모두 꺼내 채치고 볶았다.

그날 저녁, 식구들은 잡채보다 감자탕을 더 잘 먹었다. 어머니가 떠오르자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어머니는 설날 식구들에게 밖에서 사온 음식을 절대로 먹이지 않으셨을 것이다.

양성댁 강분석
앙성댁 강분석(52)씨는 1997년 봄 서울에서 충북 충주시 양성면으로 귀농, 지금은 경북 봉화로 이사해 귀농 12년차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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