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나의 행복한 시골살이

부자가 사이좋게 톱으로 장작을 패고 있다.

아침에 아이가 학교 갈 때마다 거실에 신발을 갖다놓는다. 예전에 울 엄마가 내 운동화를 아궁이 앞에 구워주셨듯이...

어머니는 날마다 신발을 데워서 학교에 보내셨다. 뿐만 아니라 따뜻한 물을 데워서 세숫물을 떠주셨고, 10리나 되는 먼 길을 가야하는 등굣길에 꽁꽁 뭉친 누룽지도 꼭 넣어주셨다. 뜨끈한 아침밥 먹여서 운동화 따뜻하게 데워준 자상한 어머니한테 막내딸은 늘 투정쟁이고 어리광쟁이였다.

“엄마 운동화 따뜻해.” “울 엄마도 그랬어.”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외할머니는 아예 장작불앞에 뜨끈뜨끈 데워주셨는걸.”했더니 “엄마도 외할머니한테 배웠어요?” 아무 말도 못하고 또 눈물이 한 움큼 넘어간다.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 벌써 한달 있으면 1주기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서 어머니 산소에는 잔디가 잘 자랐고 자손들은 소풍처럼 산소를 찾는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면서 순간순간 어머니 생각이 절절하다. 어머니 절반이라도 쫓아갈 수 있을까.

방학동안 아이와 아빠가 통통거리고 싸우는 모습도 보기 좋고 사이좋게 장작 패는 모습도 보기 좋다. 작은 공간에 있다보니 정리정돈부터 하다못해 TV 채널 가지고도 티격태격이다. 개학하면 저녁에나 볼 아이이고, 농사철이면 새벽에 나가 저녁 늦게야 오는 아빠를 보고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하던 그런 애틋함은 소풍을 보냈는지 지나칠 때마다 툭툭 건드리며 앙숙이다. 그것도 모두 사랑이다. 언제 싸웠냐는 듯이 사이좋게 장작을 나르고 하나는 톱으로 자르면서 헤헤거린다.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은지 창밖에 보이는 두 부자가 부러워서 창문너머로 한 컷 찍었다. 아이도 제법 잘 자른다. 한쪽을 높이 개놓고 한발로는 밟고 힘을 주어 톱질을 하고 반쯤 갈라지면 업어놓고 발로 탁 부러뜨린다.

아빠가 한번 시범을 보였을 뿐인데 잘도 따라한다. 도시에 살았으면 이런 걸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 아이가 자라서 장작을 때고 살지는 모르나 한 가지씩 몸에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들면 언젠가는 보약처럼 귀하게 쓰이겠지.

장작을 자르고 불을 때면서 거기다 군고구마까지 덤이다. 잘생긴 고구마는 다 팔려나갔고 못생긴 아이들만 남았지만 맛은 꿀맛이다. 저녁을 먹고 밤참인데도 뜨거워서 호호 불고 얼굴에 숯껌댕이 발라가며 서로 보고 웃는다.

어릴 때 시골집에는 고구마 퉁가리가 윗방 한구석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요즘엔 다이어트 식품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가지만 점심식사 대용으로 먹었던 고구마가 큰 양식이었던 집도 많았다. 언니 오빠들은 다 객지로 떠나가고 어머니와 둘이서 살았던 시골집이 흑백화면처럼 오버랩 되어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마을에 몇 안 되는 양문형 TV가 방안의 유일한 장식품이었던 시절 아랫집 친구가 우리 집으로 ‘웃으면 복이 와요’를 보러왔었고 손님 대접으로 고구마를 동그랗게 썰어서 석쇠에 구우면서 뒤집고 또 뒤집고 함께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사춘기시절 화롯불에 불씨를 살리려고 인두로 예쁘게 재를 누르면서 보았던 그 불씨처럼 따스한 겨울을 그 친구는 생각이나 하고 살고 있을까·    

화롯불에 묻어둔 고구마를 기다리다 잠들었던, 아침에 일어나보면 새카맣게 타버리고 속살은 하나도 없는 속빈 고구마를 원망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만하다.

유안나 씨는 2002년 귀농해 현재 충북 괴산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으며, 천연염색 천을 바느질 해 조각보로 만드는 것을 즐긴다. [시골에 사는 즐거움] 책의 저자이며, 2003~2006년까지 문화일보 ‘푸른광장’의 고정 필자로 활동했다.



충북 괴산/ annare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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