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댁의 건강밥상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식사했느냐는 질문을 왜 그렇게 많이 하나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밥 먹었느냐고 물으니 말이에요.” 지난해 늦가을에 우리 농장을 다녀간 일본 친구 나츠코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인근 마을의 공부방에 함께 다녀오는 길이었다. 나츠코는 공부방 아이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간단한 영어로 묻고 대답하는 시간이었는데, 질문을 받은 중학생 아이들은 당황했다.

당황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나 으레 하는 인사이니 왜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어른을 뵈면 “진지 드셨습니까”하며 공손하게 인사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사실 특별히 가르치실 것도 없었다. 누구를 만나든 당신께서 늘 그렇게 하셨으므로 우리도 자연스레 따라 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왜 그랬을까,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 쓴 글씨를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로 지우다가 공책을 찢어먹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둥근 상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던 기억이 두 번째로 났다. 아이들이 일곱, 어쩌다가 꽁치라도 굽는 날이면 어머니는 아예 한 토막씩 배급하셨다. 그런 날에도 어머니 몫은 없었다. 생선은 비린내가 나서 싫다고 하셨다.

또 있다. 수제비. 우리집 밥상에는 수제비가 자주 올라왔다. 전쟁 후 쌀은 귀하고 구호품 밀가루가 배급되면서부터 시도 때도 없이 수제비를 먹어야 했던 오빠들은 수제비 냄새만 맡아도 고개를 저었다. 투정을 부리는 오빠들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이것도 없어서 못 먹는 사람들이 많단다. 고마운 마음으로 먹어야지.”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한 끼 밥을 먹었다는 것은 생존을 넘어 안녕을 의미했을 것이다. 식사했느냐는 질문이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최고의 인사말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나는 초등학생 늦둥이 딸을 가진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네 딸한테 어른을 뵈면 진지 드셨느냐고 인사하라고 가르치니?” 후배는 깔깔 웃었다. “노인네처럼 그런 인사를 요즘 누가 가르쳐? 먹을 것이 넘쳐나서 덜 먹으려고 안달하는 세상인데.”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나저나, 먹을 것이 넘쳐난다는 요즘, 우리는 과연 안녕하기는 한 걸까?

양성댁 강분석
앙성댁 강분석(52)씨는 1997년 봄 서울에서 충북 충주시 양성면으로 귀농, 지금은 경북 봉화로 이사해 귀농 12년차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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