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댁의 건강밥상
당황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나 으레 하는 인사이니 왜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어른을 뵈면 “진지 드셨습니까”하며 공손하게 인사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사실 특별히 가르치실 것도 없었다. 누구를 만나든 당신께서 늘 그렇게 하셨으므로 우리도 자연스레 따라 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왜 그랬을까,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 쓴 글씨를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로 지우다가 공책을 찢어먹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둥근 상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던 기억이 두 번째로 났다. 아이들이 일곱, 어쩌다가 꽁치라도 굽는 날이면 어머니는 아예 한 토막씩 배급하셨다. 그런 날에도 어머니 몫은 없었다. 생선은 비린내가 나서 싫다고 하셨다.
또 있다. 수제비. 우리집 밥상에는 수제비가 자주 올라왔다. 전쟁 후 쌀은 귀하고 구호품 밀가루가 배급되면서부터 시도 때도 없이 수제비를 먹어야 했던 오빠들은 수제비 냄새만 맡아도 고개를 저었다. 투정을 부리는 오빠들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이것도 없어서 못 먹는 사람들이 많단다. 고마운 마음으로 먹어야지.”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한 끼 밥을 먹었다는 것은 생존을 넘어 안녕을 의미했을 것이다. 식사했느냐는 질문이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최고의 인사말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나는 초등학생 늦둥이 딸을 가진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네 딸한테 어른을 뵈면 진지 드셨느냐고 인사하라고 가르치니?” 후배는 깔깔 웃었다. “노인네처럼 그런 인사를 요즘 누가 가르쳐? 먹을 것이 넘쳐나서 덜 먹으려고 안달하는 세상인데.”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나저나, 먹을 것이 넘쳐난다는 요즘, 우리는 과연 안녕하기는 한 걸까?
양성댁 강분석 앙성댁 강분석(52)씨는 1997년 봄 서울에서 충북 충주시 양성면으로 귀농, 지금은 경북 봉화로 이사해 귀농 12년차를 맞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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