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나의 행복한 시골살이

‘뻥이요’ 라는 소리와 함께 터지는 뻥튀기 기계소리는 시골장터의 또다른 볼거리다.

달력을 보니 음성장날이다. 우리 음성 장에 갈까? 신랑 눈이 반짝거린다. 음성에 처음 내려 왔을 때는 5일장 보는 재미로 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뭐가 나왔나 돌아보며 한 가지씩 사다보면 두 사람 양손가득 보따리 보따리 들려서 무거워진다. 그러면 또 5일을 살았다. 정겨운 5일장의 매력은 순대국밥 집에서 막걸리 한잔 하는 데 있었다. 아이들도 뻥튀기 한방 튀어다 놓으면 들락날락 한 바가지씩 퍼 나르면 금세 겨울방학이 끝났었다. 지난 장부터 차 뒤에 실려 있는 쥐눈이콩을 오늘은 꼭 튀겨오자는 결심으로 나섰다.

아~ 오늘도 줄이 끝도 없이 늘어서있다. 설마 오늘은 되겠지 하고 이름표를 붙여놓고 시장 안으로 고고씽. 처음엔 조그맣게 두 부부만 하시던 순대집이 이젠 새로운 아주머니도 영입되었고 포장마차 크기도 두 배로 늘었다. 하루 종일 순대를 썰어대던 도마가 푹 패여서 “완전 조각품 같네요.” 했더니 젊은 아주머니는 “이러니 내 손목이 남아나지 않지요.” 하신다. 젊은 부부가 마음 맞춰 일년에 몇 번이나 도마를 갈아 치우고 장사는 잘되어서 날로날로 번창하는 것 같아 좋아 보인다. 곱창에 순대, 노란 찌그러진 막걸리 주전자를 앞에 놓고 중학생아들과 셋이서 마주앉았다.

“한잔 할겨?” 아빠가 묻는 말에 대답도 없이 대접을 갖다댄다. 오랜만에 음성 장에 오니 옛날생각이 나나보다. 지난 얘기부터 요즘 사는 이야기까지 부자간에 오고가는 대화가 참 재미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데리고 내려왔는데 벌써 아빠보다 더 큰 아들이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씩 골랐다. 술한잔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 아빠가 모처럼 선물이란다. 책방 안에서 시간 때우기가 제일 좋다. 각자 관심분야가 다르니 고르는 책도 자신의 색깔이 분명하다.

몇 시간을 돌다왔는데도 콩의 자리는 약간 이동이 있었지만 아직도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한다.

마침 음성으로 귀농한 혜경 씨가 현미 쌀을 튀기러 왔다. 우리보다 몇 번째 앞에 서있었던 모양이다. 혜경 씨네 현미 쌀이 튀겨져서 김이 푸썩 난다. 소쿠리에 벌려놓고 김을 뺀 다음 커다란 비닐봉투에 담는다. 우리 먹으라고 작은 봉지를 얻어서 덜어놓고 갔다. 눈 위에서 한 시간도 넘게 서있었더니 발이 시려워서 동동 구른다.

다 저녁에 할머니 한 분이 튀어 들어오시며 뻥소리에 깜짝 놀라신다. 호루라기 소리를 못들으신 모양이다. “에구머니나 애떨어지겄네. 오늘 신랑한테 쫓기나겄네.” 할머니 놀라는 소리에 귀를 막고 있던 우리가 더 놀랐다. 모두들 추워서 웅크리고 있다가는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었다. 80이나 돼 보이는 할머니가 애가 떨어진다는 것도 우습지만 옆에 서있던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더 우습다. “아이구 워째 다시 붙여봐유.”

하하하 우리는 배꼽을 쥐고 웃었다. 어르신들은 유머가 몸에 베어 있다. 언제 어디서든 개그콘서트보다 더 재미나는 웃음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컴컴해져서야 우리 콩이 나왔다. 고소하고 맛있다. 한말을 튀겨왔으니 겨우내 간식거리다. 마른반찬으로도 좋고 작은 통에 담아놓으면 들락날락 심심풀이 간식으로 딱이다.

유안나 씨는 2002년 귀농해 현재 충북 괴산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으며, 천연염색 천을 바느질 해 조각보로 만드는 것을 즐긴다. [시골에 사는 즐거움] 책의 저자이며, 2003~2006년까지 문화일보 ‘푸른광장’의 고정 필자로 활동했다.



충북 괴산/ annare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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