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나의 행복한 시골살이

귀한 농산물을 보내줘서 고맙다고 한 소비자가 보내준 홍삼 한 박스와 손편지.

“안나야, 나는 당신한테 고마운 게 있어.”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던 남편이 대뜸 던진 말이다. “그게 뭔데?” “당신이 샴푸에 물 부어서 쓰고 있는 거지?” 하하하 그것 때문에 고맙다고? 내가 아는 몇 분은 환경오염 때문에 빨래비누로 씻는 사람도 있다. 이런 실천가들에 비하면 턱도 없이 모자라지만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덜 쓰는 편이다.

건강한 밥상을 준비하며
참 고마운 마음을 내어 주는
착한 소비자들 덕분에
오늘도 우리는 다시
농사를 짓는다.


별거 아닌 게 고마운 거, 볼품없는 게 예쁘게 보이는 거, 말하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이 되는 두 사람간의 믿음이고 사랑이다. 샴푸에 물을 부어 헹구어 쓰고 부엌 세제도 물을 반 채워 희석해 쓰는 것. 오래된 나의 습관이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 배웠고 그때는 솔직히 넉넉지 않아서 아껴 썼겠지만 고맙게도 절약은 나의 몸에 배어버렸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매다가도 치약을 알뜰집게로 밀어 쓰고 그것도 모자라 가위로 잘라내 마지막까지 칫솔을 넣어 꾹꾹 밀어내다가도 너무 궁상맞은 것 아닐까 혼자 웃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알뜰하게 나만의 살림을 할 때 즐겁다.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헌 물건을 새로운 물건으로 변신시킬 때 가장 즐겁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알아주는 내 짝이 있어 더 고마운 일 아닌가?

농사를 짓고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보내면서도 이렇게 마음이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될 때가 많다. 지난 가을에 고춧가루를 받은 소비자 분이 화가 나서 전화를 한 적이 있다. 고춧가루가 곱지도 않고 맛도 없다는 통보다. 고춧가루가 나빠서 김장김치까지 버릴까 걱정이 된다는 이야기를 수저를 놓은 상태로 듣고 있었다. 결국 남편은 몇 십분 동안이나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하고 고춧가루를 반송해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고춧가루가 왔는데 우리가 먹기엔 색도 곱고 맛도 좋아서 그 고춧가루를 다 쓸 때까지 그 소비자의 얼굴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예측하여 매도하는 소비자 때문에 마당에 나가 한참을 서 있다 들어오는 남편을 보고 술 한 잔 하자고 다독였다. 사실 모자라서 주문을 못 받은 인기 짱 이었던 명품 고춧가루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해오지만 간혹 생트집을 잡아 마음을 할퀴는 소비자도 있다. 그런 전화를 받는 남편을 볼 때마다 안쓰럽고 미안해서 그냥 우리 둘이 농사만 짓고 소비자는 몰랐으면 하는 때가 있다. 어떤 소비자는 마음에 안들었는지 배추가 작다고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마음을 상하게 하고, 어떤 소비자는 배추가 크지 않아 너무 좋다고 칭찬이다. 또 다른 소비자는 오줌 눌 시간도 없이 바쁜 줄도 모르고 작은 배추로만 골라서 보내달라는 소비자도 있어 우리를 다시 웃게 만든다.

세상엔 참 여러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세상엔 참 고마운 마음을 내어주는 소비자가 많다는 것. 너무 맛있어서 고맙다는 문자말고 메일까지 구구절절이 고마움을 함께 나누는 소비자가 더 많다. 지난 여름 홍삼 한 박스가 배달되었다. 귀한 농산물 보내줘서 고맙다는 손으로 직접 써 내려간 귀한 편지와 함께. 그러니 그 상한 마음을 다잡고 다시 농사를 짓는다.

우리 농산물을 나누는 가족 같은 소비자들을 위해 올해도 감사의 인사를 긴긴 편지글로 드려야겠다. 건강한 밥상을 준비하는 소비자와 생산자간에 나누는 감사와 고마운 마음을.....

유안나 씨는 2002년 귀농해 현재 충북 괴산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으며, 천연염색 천을 바느질 해 조각보로 만드는 것을 즐긴다. [시골에 사는 즐거움] 책의 저자이며, 2003~2006년까지 문화일보 ‘푸른광장’의 고정 필자로 활동했다.



충북 괴산/ annarew@han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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