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나의 행복한 시골살이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절임배추의 고장인 괴산군은 김장철만 되면 절임배추로 들썩인다.

어젯밤 늦도록 불이 켜있더니 새벽에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요즘 괴산은 절임배추로 들썩거린다.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절임배추의 고장임을 실감케 한다. 택배회사는 물론이고 집집마다 배추를 들고 나는 일이 한여름 농사철보다 더 바쁘다. 지난번 추위에 배추가 얼어버릴까 걱정하여 밭고랑에 뽑아서 부직포로 덮어놓은 것을 매일 나갈 물량을 체크하여 절임배추 하우스로 옮겨 싣는다. 하루치 배송준비를 마치면 내일 나갈 배추를 절인다. 두 명은 배추를 다듬고, 두 명은 배를 가르고, 두 명은 소금을 치고 6명이 한조가 되어 일사천리로 씻어내야 하는데 기계가 돌아가는 컨베이어시설만큼 빠르고 섬세하다.

칸칸이 물이 흘러내리고 한 칸에 한 명 씩 서서 배추를 씻어 다른 칸으로 옮겨놓는다. 물 빠짐 자리에 앉은 사람은 배추 꼬다리를 정리해서 컨테이너로 옮기면 다음 사람은 깨끗한 비닐에 한 켜 한 켜 옮겨 저울에 20kg을 담는다. 마지막에 선 사람은 박스에 담아 터지지 않도록 꽁꽁 포장을 한다. 이번 주가 막바지다. 배추가 모자라 예약 마감이다.

올해는 직접 김장을 담그는 집이 늘었단다. 아빠와 함께 담그는 김장, 형제자매들이 모여서 하는 김장이 유행이다. 아랫집 할머니 댁에도 마당가득 김장배추가 쌓였다.

다듬고, 씻고, 소금치고…
6명 한 조로 일사천리 작업
양념세트까지 모둠 배달
요즘 주부님들 ‘호시절’


“김장을 이렇게 많이 하세요?”

“우리 딸네들 아덜네들 내일 다 내려온댜."      

시골집에도 모처럼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엄마 아빠를 따라서 할머니 댁으로 김장김치를 하러온 아이들이 더 즐겁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형제자매들이 다 모여서 김장을 한다. 참 보기 좋은 풍경이다. 여름휴가도 부모님 계신 집으로 와서 고추도 따고 옥수수도 삶아먹고 놀다가더니 겨울에는 김장을 하러 온다. 시골 외갓집풍경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따뜻하게 남겨질지 아이들의 일기장에 남을 할머니 댁은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작년부터 김장재료를 모둠으로 보내는데 그것도 인기가 좋다. 맞벌이 주부가 많다보니 이것저것 장보러 다니기도 까다로우니 절임배추에 맞춰서 양념 세트를 준비해주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다. 도시에서는 쓰레기도 문제고 많은 배추를 절일 수 있는 큰 그릇도 없다. 도시에 살 때는 욕조에 배추를 절였는데 왠지 꺼림칙하고 번거로웠다. 지금처럼 절임배추가 있었으면 많이 애용했을텐데....

얼마나 간단한가? 배추를 아파트로 들어 올리는 과정도 사라졌고 양념만 준비해 놓았다가 깔끔하게 씻어진 배추가 당도하면 버무리면 끝이니 지금 주부님들은 호강에 날라리다. 주말에 아이들과 아빠랑 같이해보는 김장 신나지 않을까? 아이들이 김치와 가까워지는 좋은 기회다. 김장하는 날 단골메뉴로 수육용 목살 사다가 아이들과 보쌈으로 볼이 미어터지도록 맛나게 먹고, 부부간에도 술 한 잔 기울이며 집안에서 힘든 일, 밖에서 고단한일 서로 이야기 나누며 풀어보는 좋은 계기가 되면 더없이 좋겠지. 모처럼 아이와 아빠 앞에서 김치 속은 어떻게 넣는지 선생님 노릇도 해보고 엄마의 힘든 일을 같이 나누어서 온 가족이 담근 김장김치는 얼마나 맛이 있을까?

“너희는 나중에 노란 배춧 속처럼 살아라.” 하셨던 여학교 때 가정선생님의 말씀처럼 달콤하게 맛깔나게 살고 싶다.

유안나 씨는 2002년 귀농해 현재 충북 괴산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으며, 천연염색 천을 바느질 해 조각보로 만드는 것을 즐긴다. [시골에 사는 즐거움] 책의 저자이며, 2003~2006년까지 문화일보 ‘푸른광장’의 고정 필자로 활동했다.



충북 괴산/ annarew@han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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