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민자에 ‘또 하나의 벽’ 우려

*영주권 전치주의 제도란
영주자격을 취득한 후 일정 요건을 갖춘 외국인만 귀화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체류만을 위한 무분별한 국적취득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미국, 호주 등에서 시행중이다.

현재의 국적 취득 과정도
까다로운 상황에서
더 엄격한 조건 적용
한국땅 정착 길 더 좁아져


정부가 결혼 이민자에 대한 국적 취득(귀화)을 엄격히 한다고 밝힌 가운데 글로벌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다문화가족 지원은 강화하되 국적취득은 엄격히 하는 영주권 전치주의 도입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다문화가족 지원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올해 말 입법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주권 전치주의는 먼저 영주권을 얻은 뒤 일정 요건을 갖춘 외국인에게만 귀화 신청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보유하지 못한 채 단순히 체류의 방편으로만 귀화제도가 이용되는 실태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 제도가 활성화하면 한국민의 정체성 없이 단순 체류 목적으로 귀화하는 사례가 크게 줄어든다”며 “연말까지 관련 로드맵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의 국적 취득 과정도 까다로운 상황에서 보다 엄격한 조건을 적용한다면 결혼 이민자들이 한국땅에 정착할 수 있는 길이 더욱 좁아진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적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기까지 2년을 기다려야 하는데다 국적취득을 신청 뒤 기다리는 시간은 1~3년이 소요된다. 결혼 후 입국해서 무려 3년에서 5년 이상을 불안정한 외국인신분으로 체류해야 하는 것이다.

이같은 엄격한 국적 취득 조건 때문에 실제로 국제결혼이 증가하는 것에 비해서 결혼이주여성의 국적 취득율은 매우 낮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05년 결혼이민자의 7826명이 귀화를 신청해 7075명이 귀화했으나, 2006년 1만2581명 신청에 3344명 귀화(귀화율 26.6%), 2007년 1만3908명 신청에 4190명 귀화(30.1%), 2008년 6월 기준 7889명의 신청자 중 3303명(41.9%)이 귀화로 허가율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박원재 홍천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복건복지가족부에서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국적 취득에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은 이들의 인권 문제를 배제한 정책의 이중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처사”라며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는 격으로 순수하게 한국행을 택하는 이주여성들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고 반발했다. 박대식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국적 취득을 엄격히 하는 방향은 현실과 맞지 않다”며 “현장에서 결혼 이민자들의 고충을 귀담아 듣고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에 발표된 다문화가족 지원 개선 종합대책은 △국제결혼중개업 관리 강화 및 결혼사증심사 강화 △결혼이민자에 대한 체계적인 한국어교육 및 배우자 교육 확대 △다문화가족 자녀를 위한 이중 언어교실 단계적 확대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 설치 등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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