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석 ㈜리버밸리 대표이사/ 전 곡성군수

미국의 농가는 경영규모 면에서 우리나라와 비교도 되지 않는 대농들이다. 그런데 이처럼 규모가 큰 미국의 농가들에게 정부의 보조금이 나간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동안의 직접지불금 총액이 농업소득 총액의 25.7%에 달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미국 직불금, 농업소득의 25.7%

세계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주도한다는 미국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무엇일까? 직불금을 규모가 작은 농가에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농 위주로 지원된다는 비판이 있는 것을 보면, 경제적 약자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정책은 분명 아니다. 비록 다른 측면의 이유들이 섞여 있을 수는 있겠지만, 필시 경제의 측면에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주된 이유가 있을 것임이 분명한 터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면 직관적이고 상식적인 답이 금방 나온다. 시장에 맡겨두면 농업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그런데 농업을 유지해야 하겠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냥 시장에 맡겨두면 왜 농업을 유지할 수 없는지와 왜 굳이 농업을 유지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와 이론을 내놓고 논쟁이 있지만, 나는 요즈음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농업의 공익적·다원적 가치를 통해서 이에 관한 매우 상식적인 이해를 얻었다.

농업 공익적 가치에 대한 보상

농업의 공익적·다원적 가치란 환경보전기능, 농촌경관제공, 전통문화유지, 식량안보 등 농산물 생산 이외의 농업의 다양한 가치를 말한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비교역적 가치라고 하는데, 거래(교역)를 통해서 형성되는 시장가격에 반영되지 못하는 가치이다. 그러므로 농산물을 사는 사람에게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고 누구나 무료로 그 혜택을 누린다고 해서 외부효과라고도 한다. 반면에 근래에 오염자 부담 원칙이 생기기 이전의 제조업은 환경을 오염시켜 아무에게나 피해를 입히면서도 그 기업은 부담을 지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공해(公害)라고 하지 않던가. 이 역시 외부효과이다. 이처럼 외부효과의 덕을 보는 산업도 있는데 농업은 오히려 피해를 입으니, 그냥 자본주의 시장에 맡겨놓으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선진제국이 왜 농업을 시장에 맡겨두지 않고 이를 유지하고자 애쓰는지는 바로 그 공익적 가치가 국가공동체에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즉 결국 농업의 비교역적 가치는 농업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와 농업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이유 및 농업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국가가 나서서 보조를 해주어야 하는 이유를 매우 상식적인 수준에서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대농에게 보조금을 주는 이유를 알만하고, 또한 경지규모가 크다고 해서 결코 기업농이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대다수가 가족농이라는 사실도 이와 연관 속에 이해되기도 한다.

보조금 지급이유 제대로 인식을

2005년 미국의 농업생산액 대비 농업보조금 지원 규모가 약 15%인데 우리나라는 5%였다. 미국은 대농인데도 저처럼 많은 지원을 해주니 우리의 소농에게는 그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농업을 유지할 것인가와 이를 위해서 어느 정도 보조를 할 것인가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며, 국력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정치적 결정이며, 아직도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함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에서 농업보조금을 떼쓰기에 대한 사탕발림처럼 보는 경향이 있어 걱정스럽다. 경제적으로는 의미가 없는데 대다수 국민이 농업·농민·농촌에 대하여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지급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농업보조금에 엄연한 경제논리가 깔려 있다는 상식과 그 정치적 의미에 대한 온당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지한 논의의 장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선진국으로 가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염원에 부합하는 길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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