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농업협력에 민족 식량줄 달려”

운무로 가득한 청옥산 육백마지기에서 올해 심을 상추 묘종을 손질하고 있는 이해극 선생.

“해발 1250고지로 올라온 것도 벌써 18년째가 되는 것 같구먼. 이 산 꼭대기에다 비닐하우스를 짓겠다고 했을 때 모두 미쳤다고 했지.” 농민발명가, 대북농업협력사업의 대부, 유기농업의 선두주자. 다양한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이해극 선생을 만난 곳은 해발 1250m에 이르는 정선 청옥산 육백마지기.

탁 트인 산 정상에 배추 무 상추 등 다양한 남새가 심겨져 있는 4만5500㎡의 광활한 농지. 초속 20m가 넘는 바람이 비닐하우스를 훑으면서 내는 굉음은 푹푹 찌는 세속에서 올라온 사람의 몸을 웅크리게 했다.

상추를 뜯다 “좀 추울 거야”며 맞아주는 이 선생은 마음고생으로 소주깨나 마시고 들판을 일궜을 법한 검고 깡마른 우리 내 농촌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노안인 듯 안경까지 썼다. 하지만 안경 넘어 눈빛이 빛난다.

‘올해도 모내기 하러 갔다 왔지’라며 말문을 여는 그. 농업분야만큼은 농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 선생이 처음 북한의 농업인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 4월 고성지역에 남새온실을 세우던 시점. 1998년 현대아산의 지원으로 이듬해 북한 고성에 1만2000평의 비닐하우스를 짓고 채소 유기농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 선생은 “컨테이너 박스가 날아갈 정도로 센 금강풍으로 비닐하우스가 찢어지기도 하고 북한측 관계자들과 의견이 달라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사람의 힘으로만 박아내린 관정에서 물이 쏟아졌을 땐 모두가 환호하며 한 덩어리가 됐었지”라며 그간의 남북농업협력의 어려웠던 기억과 희열을 요약했다.

그의 남북농업협력에 대한 애정은 민족의 식량안보차원에서 나온다. 이 선생은 “요즘 유가가 150달러 간다고 난리들인데 곡물가가 500달러까지 올라봐. 바로 죽는 거야”라며 “남북농업협력은 북한의 식량자급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지만 결국 민족의 식량주권과도 직결돼 있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모내기철이면 북한을 방문한다는 그는 “농심이란 속이지 않는 거야. 그리고 남북한을 떠나 동시대를 사는 농업인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것이지. 10년이 다 돼 가니 뭔가 결실이 나올 때도 됐지”라면서 남북농업협력의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요즘은 청옥산 육백마지기를 어떻게 하면 멋진 경관농업지구로 꾸밀까 고민 중이라는 이해극 선생.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1250고지에 터를 잡은 지도 20년에 가까워지는데 후배 농군들에게 뭔가 하나 남겨야 하지 않겠냐며 벌써 지인의 도움을 받아 숙소를 짓고 허브와 야생화 70여 가지를 길을 따라 심어 놨다고.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 농사꾼으로 하는 일마다 성공을 했고, 일을 할 때마다 도움을 준 지인들도 많았거든. 이제 도움을 준 지인들 위해 뭔가를 남겨야 될 때가 됐다”고 말하는 그. 앞으로 한국농업에 어떤 모습의 획을 남길지 주목된다.
이진우lee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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