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채 전 한국농업대학 학장
생명산업 장악…세계지배 가속
그러나 농산물과 식품은 우선 농사가 하늘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모든 작물의 생산적지가 다르며 지역마다 품질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농산물의 유통은 신선도를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특수한 유통시설을 갖추어야만 된다. 이러한 특수한 농수산물 유통시설은 투자비용은 많이 들어가지만 값싼 농수산물을 취급하기 때문에 수수료를 높게 받을 수 없어 다른 공산품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개발도상국이나 일반기업들은 투자를 기피해왔다.
그러나 농수산물과 식품은 인간의 생명산업이어서 가격으로는 얼마되지 않지만 그 중요성은 매우 높고 이를 장악하게 되면 모든 이니셔티브를 장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산업분야인 것이다. 그래서 다국적 농산물 메이저들은 일찍이 이들 농산업의 지배를 통한 세계지배의 꿈을 키워왔다.
그들은 농수산물의 유통망인 콜드체인시스템을 갖추고 세계의 신선 농수산물 유통을 장악해왔다. 과채류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Dole과 Delmont처럼 바나나의 생산적지 농장에서부터 바나나가공 저장 유통까지 장악함으로써 세계 바나나 물동량의 6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소위 카테고리킬러 대기업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제 이들 기업은 콜드체인유통망을 이용하여 바나나 외에 모든 과채류의 국제간 거래까지도 독과점하기 위한 유통전략에 나섰다. 이러한 농수산물 메이저들의 독과점화를 일컬어 카테고리킬러라 하며 세계 사료곡물 생산, 가공, 저장, 유통을 75%이상 독점하고 있는 카길이나 과채류를 독점하고 있는 돌(델몬트)등이 대표적이다.
생산·유통 등 협동조직화 최우선
이들의 분야별 독점과정에서는 제3세계의 중소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자국내의 농수산물 생산이나 유통, 가공, 저장, 관련산업들을 필요할 경우 주식시장을 통한 강제합병(M&A)까지도 동원하기 때문에 세계적 독과점이 얼마든지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농수산물의 생산적지를 점령하거나 가공, 유통을 독점하여 생명산업을 독점함으로써 이를 통해 세계를 영원히 지배하려는 욕심이 실현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WTO라는 국제무역기구를 통해 모든 농수산물의 수출입 개방과 관세감축규정을 추진하고 자본시장개방을 통해 개발도상국들의 토종기업들 중 필요한 기업들을 합병시킬 수 있으며 환차익이나 가격조정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으니 좋은 기회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다국적 대기업들의 독과점화에 대응하는 좋은 방법으로 유럽국들이 이미 제도지원을 통해 구축해놓은 농수산물 생산, 가공, 저장, 유통사업의 협동조직화가 부각되고 있다. 협동조합 방식이 기업경영 경쟁력은 떨어지지만 전통적인 산업이나 국민식량안보와 관련되는 주요산업에는 기업합병이 어려운 협동조합 방식의 구축이 필요하다. 국민의 생명줄을 쥐는 생명산업을 다국적 농수산 메이저에게 종속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 농수산 산업이 몇 개의 메이저들에게 종속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농수산물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가 농수산물을 수입할 콜드체인유통망 한 개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국민의 안전이 그들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출길마저도 그들의 루트를 이용하지 않고는 안된다는 것은 개방화 시대의 우리 농업의 전망이 그들의 손에 달렸다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 농수산물과 식품산업의 안전성과 안정성을 위하여 협동조합이 나서야 할 때다.
협동조합 개혁 하루빨리 나서야
농수산물과 식품유통망을 장악해 생산농민도 보호해야 하며 소비자의 안전도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 구조는 반드시 협동조합방식이어야 하며 이들 조합이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으려면 품목별협동조합으로 생산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가공, 저장, 유통, 관련사업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모두들 협동조합의 개혁이 중요하고 필요하며 시급하다고 목말라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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