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오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

새 정부의 농정은 ‘돈 버는 농어업, 살 맛 나는 농어촌 달성’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를 위해 ‘농수산식품을 생산자중심의 공급방식에서 유통법인이 생산자를 이끄는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하고, 농어업을 2, 3차 산업과 융합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대규모 유통회사 설립 신중 추진

현대의 푸드시스템이 소비자에게 무게중심이 있다는 점에서 대규모 유통조직을 육성하여 농업발전을 선도하겠다는 정책방향은 옳다고 본다. 그런데 몇 가지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아직 우리나라 농업의 주산지화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이고, 전국단위 품목별 생산자 조직도 자생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미 경험한 바와 같이 소규모 위탁영농회사나 농업회사 법인들도 제대로 운영이 안 되어 부실이 널려 있는 상태이다. 정부의 보조금을 바라고 급조된 조직은 애초에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생산현장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자생력을 갖춘 생산자조직이 계열화 등의 형태로 가공과 판매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정부는 시군단위로 1000억원 이상 규모의 유통회사를 설립한다고 한다. 대형 프로젝트는 치밀하게 기획되고 철저하게 관리되지 못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농업을 알면서 대형 유통회사를 효율적으로 이끌만한 CEO 인재풀이 얼마나 확보되어 있는가? 그 유통회사가 원료를 조달하는 농가와 상품을 구매해 가는 소매점들을 아우르는 조직체계는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이렇게 전후방으로 함께 참여하는 농가나 소매점들은 ‘계약’이라는 형태로 유통회사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우리는 아직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익숙하지도 않으며 경험이 부족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소매업계는 대형마트로 불리는 할인점들이 장악하고 있다. 재벌기업의 대자본을 무기로 하여 산지개발에서 PB상품 확대에 이르기까지 사업영역을 무차별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우리 농산물 사용 식품업체 주목

농협의 소매시장 비중이 작은 상황 하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유통회사는 대형 할인점들과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한다. 많은 리스크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유통회사 사업은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하며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농업의 영역을 식품산업으로 확대하여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한다는 방향에도 이의가 없다. 다만 여기에도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우리 농산물을 원료로 하는 식품업체들은 농촌지역에 많이 산재해 있으나 규모가 영세하고 경쟁력이 취약하다. 이를 어떻게 규모와 경쟁력을 키워 육성하느냐가 주요 과제이다.

한편 대형 식품기업이나 외식업체들은 수입농산물 원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그 기조는 앞으로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향후 농업과의 연계를 여하히 강화해 나갈 것인가가 또 다른 과제이다.

지역 소규모 업체 네트워킹 필요

농산물이나 식품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지역의 전통적 기술을 잘 살려 차별화하고 이를 브랜드화 하면 작은 규모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인정신으로 무장하여 계속 기술개발에 힘쓰고, 품질 및 안전성 관리를 철저히 하여 소비자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대기업이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며 소비자도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정부는 이렇게 지역별로 특화된 소규모 식품산업들을 클러스터 형태로 묶어 공통되는 인프라를 구축한다거나, 네트워킹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창출하도록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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