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석준 박사의 마케팅이야기

“마케팅 공부하게 책 한권만 소개해 주세요!”

농업 쪽에서 마케팅에 대한 강의를 하다보면 이런 질문을 많이 듣는다. 사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당황스럽다.‘책 한권 읽어서 알 거면 제가 뭐하러 10년씩이나 마케팅 공부를 했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답할 수는 없는 노릇. 대개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는 책을 추천하곤 한다. 이 책은 TV나 컴퓨터 모니터의 브라운관을 만드는 ‘한국전기초자’라는 회사의 1997년 말부터 3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농기계·첨단시설 등
하드웨어적 지원만 넘쳐
대부분 ‘적자운영’ 중
경영자 키우는데
더 많은 돈 투자하길


내용은 이렇다. 1997년 그 회사는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다. 매출 2377억에 경상 손익은 -600억. 금융기관 차입금은 3500억이었고 총 부채는 4700억이나 되었다. 거기다 77일간 노조가 장기 파업을 하는 바람에 회사 내부도 엉망이 되었고, 물건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고객들은 대부분 떠나갔다. 그 회사의 앞길은 명확한 듯 보였다. 곧 문을 닫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어렵기만 했던 회사에 서두칠이라는 한 경영자가 사장으로 임명된다. 그리고 그는 3년 만에 믿기 어려운 성적표를 내놓는다. 3년 만에 3500억이라는 금융기관 차입금을 다 갚고 2000년 1717억이라는 순이익을 달성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기적을 77일간 파업을 했던 직원들을 단 한사람도 해고하지 않고 함께 일구어 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사실 그 회사에서 바뀐 것은 한가지 밖에 없다. 바로 제대로 된 경영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뿐이다. 시설도, 직원도 그대로였다. 이 책을 보면 경영자의 경영지식과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또 그 지식을 공부하고 훌륭한 경영 능력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와 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 농업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경영자와 경영지식이 아닌가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농업관련 지원 시설이나 농기계 등 하드웨어적 지원은 넘치도록 많이 지원되었다. 문제는 그 지원된 시설이나 기계들이 대부분 ‘적자 운영’ 중이라는 점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좋은 시설과 기계는 공급되었을지라도 제대로 된 경영자나 경영지식들은 거의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첨단 시설을 도입할수록 시설 보다 경영자 키우는데 더 많은 돈이 투자되어야 한다. 마치 컴퓨터를 제대로 쓰려면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설 짓는데 2년이 걸린다면 제대로 된 그 시설 경영자를 키우는데는 10년은 걸린다. 싸구려 교육과 경영을 전공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컨설팅 몇 번 받는다고 바로 훌륭한 경영 활동이 이루어 질 수는 없다. ‘책한권 읽어서’ 경영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 정부에서 유통회사 설립, 대규모 농업회사 등 여러 가지 장밋빛 계획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와 달랐으면 한다. 커다란 시설들만 덩그러니 지어놓고 운영은 어떻게 할지 책임 안지는 모습은 이제는 없었으면 한다. 지원된 시설들이 효율을 낼 수 있도록 장기적이며 체계적인 경영자 양성과 경영지식 개발·전달에 충분한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원된 시설이나 농가에 보급된 기계들이 최대한 활용되고 올바로 경영될 때, 우리 농가들은 모두 ‘흑자 경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마치 서두칠 사장이 다 쓰러져간 기업을 일으켜 세워 엄청난 흑자를 낸 것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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