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이 본보 상무이사

이순신이 일반 목선에 덮개라는 새로운 가치를 부가하여 건조해 낸 것이 거북선이다. 그가 임진왜란 때 우리 진영의 수십 배에 달하는 왜선을 격파, 23전 23승이라는 놀라운 승전고를 울린 것은 거북선이 있어 가능했다.

위기에서 나라를 구해낸 민족적 영웅 이순신이 21세기 들어 뛰어난 지략가이자 경영자적 면모를 갖춘 CEO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가운데 이제 농업분야에서도 거북선의 원리를 응용, 농업의 독창적 가치 창출을 강조한 ‘거북선 농업’이 주목 받을 전망이다.

이른바 거북선 농업을 주장한 스타농업인 정운천 전 한국농업CEO연합회장이 오는 25일 새로 출범하게 될 이명박 정부의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내정됐기 때문이다.

‘거북선농업’ 주창 정운천 후보

그는 자신이 출간한 ‘거북선 농업’이라는 저서에서 고구마는 거북선 전략의 산물이라고 강조한다. 즉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세척하고, 색깔을 내고, 포장을 해 고구마를 새로운 컨셉의 건강기호식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농산물 공급 과잉시대에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농업에도 기업의 경영기법을 적용, 소비자들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는 새로운 가치 창조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더욱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농림부 장관에 그를 내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신지식 농업인, 스타 농업인으로 주목을 받았던 그가 직접 농정의 최고 수장을 맡게 돼 향후 어떤 평가를 받을 지는 미지수다.

이미 한편에선 광주·전남 농민연대가 그의 농림부 장관 내정과 관련, 적임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농업의 유지 발전 없이는 선진국으로 결코 진입할 수 없다’는 확고한 농업관을 가진 사람이 농림부 장관으로 취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 후보자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지만 이는 대다수 농민들의 바람일 것으로 본다.

스타 농업인서 농정 수장 변신

그동안 현 참여정부는 물론이요, 역대 정부는 항상 국익을 내세워 농업·농촌·농민의 희생을 강요해왔다. 그로 인해 요즈음 대다수의 농업인들은 감당하지 못할 규모의 부채더미와 불안전한 소득구조 속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일부 성공한 농업인, 스타 농업인들을 부각시키고 이들을 벤치마킹해 우리 농업·농촌의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경향이 짙었다. 정 후보자도 이중 한 명이다.

그러나 한 줌도 안되는 스타 농업인을 내세워 ‘열심히 하면 당신도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유혹하는 얕은 정책으로는 우리 농업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농민들에게 열패감만 안겨주기 십상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모두 경쟁력 지상주의에 경도돼 농업경영의 규모화와 생산성 향상을 줄기차게 외쳐 왔지만 농가의 실질 소득은 정체하고 도·농간 소득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경쟁력 지상주의서 벗어나길

강조하건대, 차기정부는 경쟁력 지상주의-생산성 제일주의라는 좁은 이념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농업의 국제경쟁력도 높일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영세한 개별 농민의 힘만으론 이 무한경쟁의 파고를 헤쳐나갈 수 없다. 그래서 농업경영을 맡고 있는 농협을 비롯해 영농조합 등 농업경영체들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과 환경의 이념을 강화하여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극대화하고 농촌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혁신해야 한다. 이것이 함께 실현될 때 진정 정 후보자가 주장한 ‘거북선 농업’은 성공했다고 평가를 받게될 것이며 더 나아가 농업을 6차 산업으로 만들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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