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산업부 기자

설 연휴와 맞물리는 마감일정으로 바쁜 31일 아침. 뜻밖의 전화 한통을 받았다. 지난 1월 28일자 ‘임대농 직불금 농자재로 줘야’라는 제하의 기사를 잘 봤다고 하신다.

내용이란 것은 이랬다. 직불금은 실경작자가 받게 돼 있는데 칼자루를 쥔 지주가 받아가고 실경작자인 임대농은 한 푼도 못 받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란 독자의 반향에 살아 있음을 느끼는 법. 합천에 취재 갔다 새벽까지 이어진 마감으로 피곤했던 몸이 일순에 풀린다.

나 아니면 누구에게 푸념하시겠나 싶어 바빴지만 30분가량 전화기를 놓을 수 없었다. ‘직불금이 지주에게 가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찍히면 농사를 못 짓게 되니 어쩔 수 없다’는 말에서부터 ‘잘못이 있으면 농민들이 정부에 요구하고 스스로 바꿔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푸념, ‘실경작을 인정해주는 이장도 그러면 안 되지’라는 지적, ‘이장 선거로 동내 패가 갈려 문제’라는 주제를 벗어난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수화기를 든 팔이 저리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투리로 보아서는 충청도 분인데 ‘내가 아무개요’하며 이름을 밝히지 않으신다. 이유인 즉, 이름을 밝혔다가 공연히 신분이 탄로 나고 이를 지주가 알게 되면 그나마 짓고 있는 임대농사도 못 짓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란다.

‘민원이 있으면 면에 설치된 신문고에 엽서를 써서 넣으라는 디, 아 있으면 뭘 해유. 이름 다 써야 하는디’ 그래서 신문고도 못쓴단다.

가슴이 답답하다. 부재지주가 직불금을 받아가는 문제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문제를 지적한 기사가 한두 번 나온 것도 아닌데 왜 이 농민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신분조차 밝힐 수 없는 지경까지 갔을까.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이놈의 문제는 언제나 해결될까.
이진우lee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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