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 중앙대 교수

이제 겨우 두 달 후인 12월 19일은 차기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각 정당은 자기당의 후보를 경선을 통해 확정하고 각종 공약을 제시하며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당 어느 후보를 막론하고 농업·농촌·농민에 관한 정책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각 당의 후보들이 농업·농촌 문제를 보는 철학의 부족과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 안목이 없는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후보자들이 각 당의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농업·농촌에 대한 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한 적이 없다. 한마디로 중요하게 보지 않고 있다.
  
농업문제, 소홀히 해서는 안돼

그런데 과연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농정공약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지금 우리사회는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천박한 논리와 힘 앞에 다수의 국민들과 기업은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지난 20∼30년 간의 개방화 세계화는 세계 대다수의 국가들에서 불평등이 더욱 확대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계층중의 하나가 농민계층이고 농업이라는 산업이며 농촌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간, 계층간, 지역간 불평 즉 사회 양극화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굳이 통계를 제시하지 않고서도 농업은 점차 축소되고 있고, 농민의 소득수준은 도시근로자 소득과의 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으며, 농촌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군다나 상위 1%의 국민이 토지의 약 55%, 상위 5%가 약 85%이상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토지가 투기의 수단이 되어 버린지 오래인 상황에서 땅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농촌의 경우 이러한 현실을 안고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있을 것인지 앞이 캄캄하다. 따라서 농업·농촌·농민문제가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 국가의 지속적인 균형발전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도 우리의 지도자들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철학 정립

지금부터라도 각 후보는 적극적으로 농정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토지문제를 비롯한 농업·농촌·농민문제를 보는 시각과 철학의 정립이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WTO체제가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을 농업·농촌문제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며, 농업·농촌을 지키고 이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새로운 철학과 패러다임의 정립이 필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농정이 수립되어야만 한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IMF에서도 인정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 철학에 입각한 경쟁력 지상주의, 효율성 중심의 농정으로는 우리의 농업·농촌·농민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농업·농촌의 본질적 가치와 식량안보, 식량주권에 대한 확고한 인식도 필수이다. 식량안보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미래에도 변함 없는 덕목일 수밖에 없다. 국제 농산물시장의 불안요인은 전쟁의 위험을 포함하여 생태학적 위험, 농작물과 가축의 질병, 방사능 오염 등 안전성의 위험, 농산물 수급의 변화 등을 인식해야 한다. 식량안보를 위한 공공지출은 국민적 위험회피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위험회피를 위해 보험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식량수급목표와 논 면적의 유지 목표 등을 설정하자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존립을 위한 최소한의 주권이며 식량안보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유지해야한다는 당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민족·생명산업’으로 인식해야

농업이라는 산업은 그 본질적인 가치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가격만으로 또는 경제성만으로 경쟁력을 파악하여 포기해야 되느니 마느니 하는 논쟁은 그 자체가 무의미함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농업은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산업이며, 민족과 영원히 함께 해야 할 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민족의 산업', '생명의 산업'이라는 적극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한 문제인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현실을 이해하고 농업·농촌·농민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실현 가능한 농정공약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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