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논 임대해 규모화요? 부채에 골병만 더 늘걸요”

지난해 수확기 쌀값이 폭락한 가운데 올 3~4월이면 수입쌀이 동네 수퍼마켓에서 소비자들에게 팔려 나간다. 지난해 11월23일 국회에서 쌀협상 국회 비준안이 통과돼 의무수입량도 늘고, 일부는 밥쌀용으로 시판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입쌀 시판을 앞둔 쌀 농사의 실태를 현장에서 진단하고, 정부의 농업·농촌종합대책 가운데 쌀산업종합대책을 중심으로 정부 대책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진단하고 향후 희망을 찾아본다. 섣부른 수매체 폐지…쌀 대란 초래소득직불제 ‘소득보장’ 기대 못미쳐규모화 통한 소득안정 ‘현실과 거리’ #진주 쌀전업농 김종도씨=“조수익 조금 더 올릴 라꼬 흩어져 있는 논 쪼가리들 임대해 경영규모 늘여봐야 말짱 ‘허빵’입니다. 이대로는 비용절감은커녕 부채와 골병만 늘지요. 젊은 전업농들에게 ‘환상’이 아니라 ‘희망’을 주려면 보다 획기적인 쌀산업 지원대책이 나와야 합니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 압사리에서 2만여평(자영8000평·임대1만2000평)의 쌀농사를 짓고 있는 쌀전업농 김종도(46세)씨는 이같이 주장했다. 김씨는 2005년 40kg들이 1000포(200평당 10포)의 나락을 생산했다. 이중 임대료·종자·친인척소비 등을 위한 370포를 제한 후 237포를 공공비축미로 내 1120만원, 393포를 농협RPC 자체수매로 내 1650만원 등 총2770만원의 직접수입을 확보했다. 이는 전년 4510만원의 수입에 턱없이 못 미친다. 종자를 고품질 품종으로 전환하면서 200여포의 소출이 줄었고, 나락매입시세가 1만원 이상 하락했기 때문이다. 경영비는 △종자대 66만원 △비료값 214만원 △농약값 1000만원 △농기계 수리비 300만원 △면세유값 180만원 △농기계 할부 1652만원 등 인건비를 제외하고도 3412만원이 들었다. 642만원의 적자가 생긴 셈이다. 80kg 정곡의 전국평균시세를 14만원으로 가정할 경우 김씨는 가마당 2만5500원씩 총 1037만원의 쌀소득보전직불금을 받을 수 있지만 그래도 수익은 약 400만원에 불과하다.<쌀소득보전직불금 = (170,000원-140,000원)*85%*61가마*6.67ha = 1037만원> 김씨는 “규모를 6ha로 늘인다고 어떻게 도시근로자 평균소득(5300만원)과 대등한 소득을 확보할 수 있으며, 136ha(미국 쌀농가 평균경작면적)와의 경쟁에서는 과연 얼마나 승산이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며 정부 쌀산업대책의 실효성에 근본적인 의구심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나라, 특히 경남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쌀산업의 규모화는 집단화가 아니라 조각논의 임대를 통한 재배면적의 단순한 확대로 추진되는 경향이 짙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규모확대는 단위면적 당 생산비감소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 조수입 증대에 약간 기여할 뿐이며, 이제는 쌀값폭락 심화에 따라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것. #수입쌀이 들어오면=게다가 올해부터 수입쌀이 시판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올해 밥쌀용 수입쌀 시판량은 2005년도분 2만2557톤(16만석)과 올해분 3만4429톤(24만석)을 더해 5만6986톤(40만석)에 달할 전망이다. 이제 미국 캘리포니아산 '그린'쌀과 중국 흑룡강성의 '칠하원'쌀 호주의 '썬라이스' 같은 수입미가 우리의 이천쌀이나 김제쌀과 나란히 매장에 오르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의 최종 소비형태와 똑같이 백미 10kg, 20kg 포장이다. 김명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입이익금을 부과하고 미국쌀은 4만~4만5000원, 중국쌀은 3만~3만3000원에 판매될 것으로 예측했다. 수입쌀은 미국쌀의 경우 중산층 이상의 소비자 가구에서, 중국과 호주쌀은 서민층이나 식당 등 대량소비처에서 구입할 것으로 보인다. 수입 식용쌀 판매는 시장의 불안심리를 부추기는 것은 물론 시장에서 고품질 수입쌀 수요를 촉발하거나, 반대로 저가 수입쌀로 국산쌀 소비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 지난해 쌀값 하락속에서 비난의 대상이 됐던 대형할인점의 국산쌀 할인 판매가격이 3만2000~3만400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향후 수입쌀 시판은 악재임에 분명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당초 쌀 수입 확대 등으로 80kg당 농가판매가격이 2004년 15만9000원에서 2008년 14만7000원, 2014년 12만2000원으로 하락할 것으로 보았지만, 이보다 더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온다. 농경연 관계자는 "추세를 반영하면 향후 11만~12만원대로 1만~2만원 더 떨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해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쌀산업종합대책으론 안된다=현재 정부의 쌀 정책은 2004년 2월 농업·농촌종합대책중 쌀산업종합대책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쌀시장 개방의 확대, 보조금 감축에 대비, 시장원리를 도입하고 규모화를 통한 소득안정에 중점을 둔다는 방향이다. 그 내용은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공공비축제를 도입하며, 2013년까지 6ha수준의 전업농 7만호를 집중 육성, 벼 재배면적의 50% 이상을 전업농이 담당토록 하는 것이다. 또한 쌀값 하락으로 인한 농가소득 감소는 쌀소득보전직불제로 보전하는 한편 미곡종합처리장(RPC) 경영혁신을 통해 고품질쌀 생산·유통의 중심체로 육성한다는 내용. 그러나 이러한 쌀산업종합대책은 지난해부터 진행중인 쌀값 폭락 등 쌀 대란, 농가소득의 급감으로 이미 한계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섣부른 추곡수매제 폐지는 쌀 값 폭락을 불러왔고, 공공비축과 RPC를 통한 수급조절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으며, 쌀소득안정직불제도는 정부가 홍보한 만큼 소득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평가되고 있다. 농민 김종도씨는 “현 쌀소득보전직불제의 목표가격엔 경영비상승률이 반영되지 않아 전년 수준의 소득을 기대하기 힘들며, 이 목표가격도 3년 후엔 더욱 폭락된 시세를 반영해 더욱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며 “쌀값하락 안전장치로서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 양정의 핵심인 시장원리, 규모화를 통한 생산비 인하와 소득안정 논리는 현실과 괴리된 탁상행정이란 비판이 높다. 농민들과 전문가들은 정부 양정을 총체적 난맥으로 규정하고 전면적으로 개편하라는 의견이다. #향후 양정 개편방향 소득보전직불금 목표가 17만→18만원으로고정직불금 130만원, 기준가 도별 적용을‘식량자급률 법제화’ 농업계 숙원 풀어줘야 정부의 규모화 논리로는 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많다. 따라서 일방적인 규모화보다는 쌀농가의 소득을 보장하면서 쌀산업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방향이 제시된다. 윤석원 중앙대 산업대학장은 "정부는 6ha 이상이면 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나, 이는 쌀 가격이 폭락하면 경영압박이 중소규모보다 크다"면서 "임차비율이 높고 농지 및 농기계 구입으로 부채비율이 많은 상황에서 전업농 규모화는 또 다른 부실을 가져올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규모화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으로 수입쌀과 경쟁하고 품질을 높일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규모화에서 소외되는 영세농과 탈농자들에 대한 대책, 규모화를 저해하는 필지 분산에 대한 대책도 없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전국농민회총면맹 관계자는 "경쟁상대를 수입농산물에 두고 있는 규모화는 필연적으로 생산력 증대를 요구하고, 이는 엄청난 자본투자로 귀결돼 또 다시 농가부채를 양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쌀농가 소득안정대책과 관련, 농민단체들은 지역에 따라 손해를 보는 현행 쌀소득보전직불제의 목표가격을 17만원에서 18만원으로, 고정직불금을 70만원에서 130만원으로, 기준가격을 도별평균으로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현 제도는 보전가격이 계속 내려가는 만큼, 목표가격 산정방식을 생산비와 물가인상, 도농간 소득격차, 안정적인 생산유지 등을 고려해 법제화하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차제에 농가별 소득안정대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양승룡 고려대 교수는 "쌀, 과수 등 품목별로 각각 소득보전직불제를 도입하는 것은 운영상 효율성이 낮고 농가 전체의 소득을 안정시키는데도 효과가 떨어진다"며 "캐나다의 제도를 벤치마킹해 조속히 농가단위의 소득안정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식량자급률 법제화는 오래된 요구이나,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농업·농촌기본법을을 전면 개정, 식량자급률 목표 설정 및 달성을 위한 정부의 의무를 규정하고, 쌀을 포함한 주요 작물을 중심으로 자급계획을 명시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매년 300만석 이상의 북한 쌀지원 법제화, 학교급식법 제정 및 지자체별 급식조례 제개정도 중요하다. 또한 효과적인 쌀수급 안정을 위해 공공비축 매입량 확대 및 시장격리, 생산조정제 시행, 농가판매물량에 대한 차액보전 도입, 보관·저장시설 확대 등 양정을 총체적으로 개편하라는 주장이다. 쌀 대란의 원인은 추곡수매제 폐지에 있는 만큼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이 끝나는 시점까지 추곡수매를 한시적으로 부활하자는 의견도 제시된다. 미곡종합처리장(RPC) 혁신방안의 손질도 필요하다. 한국식품연구원 쌀 연구단 김의웅 선임연구원은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추더라도 RPC 종사자들의 전문성이 결여되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RPC 관계자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건조와 저장, 가공에서 진정한 고품질 쌀 생산설비가 설치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검토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 진단/윤석원 중앙대 교수 농가 ‘소득 안정’ 최우선가족농 살리는 정책으로 추곡수매를 폐지하면 가격이 폭락한다고 그렇게 지적했는데도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 오늘 쌀 대란을 불러왔다. 이제 시급한 것은 농가 소득안정이다. 쌀 수입 확대, DDA, FTA 등을 고려하면 개별 농가단위의 소득안정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현행 쌀소득보전직불제는 전국평균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개별농가의 소득을 제대로 보전할 수 없다. 쌀 경지면적, 임차면적, 생산구조, 품종, 판매실태, 소득실태, 생산비, 수확후 관리, 경영실적 등을 전수조사해 개별농가에 대한 소득안정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개별 농가의 소득안정이 우선이고, 그 기반 위에서 고품질, 친환경, 유통문제 등을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규모화를 다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농업여건상 정부 의도대로 되지도 않을 뿐 더러, 그대로 되면 농민과 농촌은 사라지고, 농업만 남는다. 농민(가족농)을 살리는 정책으로 가야 한다. RPC는 서로 여건이 다른 경영체이므로 무작정 통폐합은 어려울 것이다. 시군의 특성에 맞게 차별화된 마케팅 주체로 육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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