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심 세계에서 강요된 ‘여성상’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전소설로 정평이 나 있는 ‘춘향전’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 속에 끊임없이 재창작되고 있다. 그런데 춘향전은 왜 그렇게 줄기차게 읽히는 것일까?그것은 한국인의 은밀한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춘향이는 한 남성만 지고지순하게 따르는 열녀상으로서 의미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춘향이의 행복은 정절을 지킨 대가로 주어진 것이다.결국 춘향은 남성중심 세계의 열녀-정절 가치관을 민중의 삶에 유포하는 인물이다.심청전에서 심청의 상도 살펴보자. 만약 심청전에서 주인공이 남성이었다면 작품의 내용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남성측 가문을 이어야할 외아들이기 때문에 죽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공식적으로 남성 세계의 보조자로 엄하게 규정돼 있었으며 여성 자신들 또한 그러한 규정을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재해석해 강도 높게 실천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심청전의 심청이는 세정을 모르는 남성(아버지)의 보완자로서 경제 생산적 활동을 포함해 일상생활을 꾸려갔고 종국에는 죽음을 자처하면서까지 남성가장의 명예를 높이는 일에 적극 뛰어든 인물이다. 즉 심청이는 친정에 대해 출가외인이 되는 자신의 여성적 입장을 십분 활용해 강한 생활력과 적극적인 의지로 가부장제의 유지를 강도 높게 도운, 가부장제의 수호자였던 것이다.단군신화의 웅녀상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여성의 특질은 끈기와 참을성이 있는, 순박하고 우둔하며 내성적인 그런 곰의 특성과 결부돼 왔다. 곰은 삼종지도, 남존여비, 순종, 인내, 침묵 등 여성다움의 미덕을 만들어 여성의 자유로운 삶을 통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사람은 이질적인 ‘곰’성과 ‘호랑이’성이 공존하는 전체성을 갖는다. 즉 현실적이고 공격적이면서 적극적인 외적인 힘을 상징하는 호랑이성과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이면서 이상적인 내적인 힘을 상징하는 곰성을 공유하는 것이다. 환웅의 남성중심적 체제에 맞는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여성의 호랑이성은 떨쳐내야 하는 속성이다. 금기를 지켜 사람여자가 된 웅녀가 여성으로서의 다른 삶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잉태하기만을 원했다는 대목은 웅녀가 보여주고 있는 두 번 째의 자기상실이다. 남녀 평등지수로 볼 때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라든가, 초등학교 아동의 남녀 성비의 불균형이 심각해 미구에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을 접할 때, 여성의 해방은 여성 뿐만 아니라 남녀 양성 모두의 진정한 해방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전제조건임을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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