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가정사, 참견 좀 합시다" - 정읍시여성농민회농촌지역에 만연한 성폭력과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실제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정읍시여성농민회와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쳤다.지난달 31일 본격 출범한 ‘정읍시민생활법률상담소’는 정읍시여성농민회 전회장인 서옥례씨와 원불교 상동교당 교무인 박성연씨가 공동대표를 맡고, 법대를 졸업한 정선희씨와 이경미 회원이 각각 성폭력상담소장과 가정폭력상담소장을 책임지게 됐다. 또 정읍시여성농민회 부회장인 김성숙씨와 정책부장 박연희씨가 상담소의 운영위원으로 결합했다.정읍지역 여성 절반이상 폭력 경험정읍시여성농민회가 이 사업에 뛰어든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지난 99년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한 회원이 자살을 하고서야 가정폭력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게 된 것. 지난해 4월 정읍지역 여성들의 가정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는 훨씬 더 심각했다. 농촌지역의 가부장적 의식 때문에 가정 내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물론, 폭력 피해자의 78.3%가 신체적 폭력을 당했을 정도. 더욱 큰 문제는 남편이 목을 조르거나 흉기를 사용해 폭력을 휘둘러도 여성들이 무조건 참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45.5%)는 점이다. 이경미 가정폭력상담소장은 “가정폭력 양상이나 대처방안이 도시와 큰 차이가 있다”며 “대부분 남편의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은 상담할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상담소를 찾는 여성은 대부분 맞아 죽을 정도가 돼서야 겨우 온다”고 밝혔다.“남의 가정사” 인식 팽배 … 처벌 미흡더구나 대부분 사람들이 ‘여자가 맞을 짓을 했다’는 데서 가정폭력의 원인을 찾고, 이웃에서도 ‘집안 일인데 어떻게 참견하느냐’는 의식이 강해 상태가 심각해도 경찰서에 신고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 설령 신고한다고 해도 경찰들이 출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훈방조치에 그쳐 실질적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결국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피해 여성들은 가출을 하거나,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해 가정 파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실태는 이렇게 심각한데도 정읍지역 내에 상담소는 단 한 곳 뿐인데다, 이 상담소마저 가정폭력 예방이나 교육은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가정폭력 문제를 피해자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 판단한 정읍시여성농민회는 이 문제를 단순히 넘길 수 없었다.출장상담·토론회·예방교육 등 추진정읍시여성농민회는 먼저 정읍시농민회와 지역주민들을 중심으로 후원회를 구성해 사무실을 마련하고, 상담요원을 선임하는 등 기본 골격을 만들었다. 물론 사무실 물품도 각 개인에게 기증 받았다. 이렇게 마련한 사무실에서 지난달 5일부터 상담사업을 시작한 결과 한 달도 채 되기 전 30여건의 상담이 이뤄졌을 정도.정읍시민생활법률상담소는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예방하는데 주력하기 위해 다양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먼저 지난 3일 가정폭력 실태 및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 데 이어 수시로 출장상담과 소모임 형태의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 상담 후 법적 조치가 필요한 경우 소송을 지원하고, ‘전주여성의 전화’나 ‘광주여성의 전화’의 쉼터와 연계해 피해자들의 편의를 도울 생각이다. 하반기에는 청소년 성의식을 조사해 그동안 말로만 제기됐던 청소년 문제를 정책화하도록 이끌 방침이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내에 ‘가정폭력 지킴이’도 구성할 계획.열악한 재정 ‘걸림돌’… 대책마련 분주주위의 인식이 이들이 활동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이경미 가정폭력상담소장은 “우리가 얼만큼 해낼 것인가에 대한 주위의 의심이 큰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농촌내에서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해 주위의 의심을 불식시키겠다”고 말했다.김성숙 부회장은 “그동안 여성농민들이 농업문제에 주력해왔지만, 이제 농촌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부각시키고, 여성농민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위해 이 사업을 제기했다”며 “공공기관에서는 시도하지 못하는 이같은 사업을 앞으로 다양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최윤정 기자 choiy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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