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을 마무리하면서 여성농업인단체 임원을 대상으로 올 여성농업인 정책에 대해 점수를 매겨달라고 했다. 점수는 모두 65점 이하. 낙제점이다. 농림부 차원의 노력은 인정하지만, 아직 미흡한 점이 많고 지역에서는 어떤 정책도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이들이 이야기하는 각 정부기관의 올 여성농업인 정책, 그리고 새해에 설계돼야 할 여성농업인 정책에 대해 직접 육성보도 한다. 농촌 ‘가부장제’ 폐단 아직도 극심“남성들 대상으로 가부장제의 폐단을 없앨 수 있는 의식교육을 시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영농교육이다 뭐다 남자들이 참석하는 교육은 다양한데, 한 번도 가정에서의 역할분담이나 여성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은 한 적이 없어요. 농촌의 뿌리깊은 가부장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다른 복지정책은 실효성이 없어요.” 경기도 평택시 장당동에서 낙농을 하는 최귀옥씨의 지적이다.농어촌주부문학회 총무를 맡고 있는 최씨는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는 정책이 하나도 없어요. 예를 들어 올해 처음 출산농가도우미제도를 시행했는데 제도 자체는 좋지만, 혜택받은 여성농업인이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라며 정부정책에 대한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이러한 지적은 최씨만이 아니었다. 출산농가도우미제 등 현실과 괴리이향희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수석부회장은 “정부의 여성농업인 담당자가 여성농업인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데, 중앙관료 눈치를 더 많이 보는 것 같아요. 간담회 등을 통해 다양한 요구를 전달하지만, 제대로 받아들여진 게 없어요. 예를 들어 농가도우미제도는 실질적으로 여성농업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병간호에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내년에 지원비율이 80%로 확대된다지만, 다양하게 활용되도록 개선해야 해요”라며 현실성 있는 정책을 촉구했다. 만약 관련 정부기관에 점수를 준다면 몇점을 주겠냐는 질문에는 “솔직히 안주고 싶지만, 60점 정도”라고 답했다. 올해 농림부가 추진한 여성농업인 육성 5개년 계획의 내용을 모르는 단체 임원도 있었다. 한국여성농업인경상남도연합회 부회장 공점숙(경남 함안군)씨는 “말만 많았지 실질적으로 한 게 없다”고 잘라 말한다. 농진청,여특위 인식부터 바꾸도록“중앙에서 여성농업인 정책을 추진한다 해도, 지역에 반영되는 게 거의 없죠. 물론 예년에 비해 여성농업인에 대해 인정해주는 분위기는 확산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이 정책으로 이어져 반영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특히 읍면지역 실태는 더욱 심각해요. 농어촌발전심의위원회에도 공직에서 챙겨주는 단체만 참여해요.”공씨에게 여특위가 추진한 정책에 대해 묻자 “여성농업인을 위한 정책이 있긴 있었나요?”라고 되묻는다.공씨의 불만은 끊이지 않았다. 농촌진흥청 사업에 대해 공씨는 “몇년째 변화된 게 없습니다. 여자들 쉼터다 건강관리실이다 마을에 새로 지어놓은 것은 많지만,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된 곳이 많습니다. 컴퓨터 교육도 일회성에 그치고 보니 별 도움이 안돼요.”공씨는 농림부에 30점, 여성특별위원회에 10점, 농촌진흥청에 50점을 줬다. 산부인과 진료 지원 등 시급 검토를농가주부모임전국연합회 박순화(경기도 안성시) 회장은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컸죠. 현장 여성농업인들은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 없다고 많이 제기합니다. 농림부 담당자들도 여성농업인들을 좀 골치아프게 느끼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장관의 여성농업인에 대한 의지 정도에 따라 직원들의 관심도도 차이가 나는 것 같고. 농촌진흥청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여성특별위원회는 여성농업인쪽으로는 전혀 비중을 두지 않고 있어요”라며 올 여성농업인 정책에 대한 전반적 평가를 내놓는다.박 회장은 우선 추진돼야 할 정책에 대해 “여성농업인들이 부인병으로 고생하는데 산부인과는 어느 지역이나 읍면단위에는 없어요. 모두 시나 군까지 나가야 해요. 아파 죽어야 겨우 찾게되죠. 1년에 한 번만이라도 여성농업인 산부인과 진료를 지원했으면 합니다.”라고 전한다.농촌현실 고려, 실효성 있는 정책을생활개선중앙회 회장인 김현숙(강원도 정선군)씨의 평가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 회장은 “새로운 정책이 없었습니다. 물론 애쓰는 건 인정하지만, 농촌현실에 얼마나 맞느냐가 문제입니다. 출산농가도우미제도의 경우 취지 자체는 찬성하지만, 출산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탄력적으로 운영돼야 합니다.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발전되겠죠”라며 다시 기대를 거는 눈치다. 그러나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농촌진흥청 역시 기존에는 농촌생활환경 개선이나 영양개선 중심의 사업을 진행했지만, 이제 의식교육과 농촌소득 안정을 위한 기술보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합니다.”정책 수립시 여성농업인 참여 확대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편정옥(강원도 양구군) 회장은 “농림부에서 추진하는 여성정책은 홍보도 부족하고, 여성농업인의 참여도 제한돼 있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편 회장은 “여성농업인 문제를 전체 농업 문제로 인식하고, 모든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대안도 마련해야 합니다. 또 농림부 여성정책담당관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우선 마련해야 합니다.”라고 제안했다.중앙-지방간 유기적 협조체제 필요“정책 입안 차원에서 여성농업인 육성 5개년 계획은 큰 성과”라는 황미숙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은 “그러나 현장 여성농업인들은 이 정책에 대해 대부분 잘 모릅니다”고 지적했다.황 총장은 “중앙정부에서 시안은 마련했지만, 이것이 지방정부까지 내려오는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이에 대한 홍보와 이 정책이 실효성 있게 추진되기 위한 과정이 중요하죠. 농림부의 타부서에서는 여성정책담당관실이 무슨 사업을 하는지조차 공유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여성농업인 단결·의식 개혁 중요물론 이들의 비판 뒤에는 자기 반성도 따른다. 공점숙씨는 “먼저 여성농업인들이 단결하고 의식개혁을 통해 정부기관의 인식을 바꿔내야 합니다”라고 지적했으며, 박순화씨도 “지역에서 먼저 한 목소리를 내고, 정책을 생산토록 강제했어야 하는데 미흡한 점이 많았다”고 반성했다.최윤정 기자 choiy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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