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선 선생의 교단일기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실업계로 온 아이.여유가 없는 탓에자식 사랑이 서툴기 만한 아버지.아이는 그런 아버지를이해한다. 그것이 대견하고,안쓰럽다.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슈!“ 철커덕. 전화기가 끊어졌다. 늦게 까지 학교에 남아 독후감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남은 아이가 “선생님. 아빠가 잘 안믿어줘요.” 라고 말해 나는 전화를 걸어줬다.

“여기 학교입니다. 제가 글쓰는 것을 좀 지도해 준 다음에 늦더라도 집까지 데려다 주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나온 아버지의 반응이다. 서운했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아이의 글 속에 등장하는 ‘아빠’의 모습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 글의 제목은 ‘17살 가정주부’였으니까. 책을 읽고 내용의 가닥을 함께 잡고 원고지에 독후감을 쓰게 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라 대회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했지만 아이는 열심히 준비했다.

집 앞까지 데려다 주면서 “아빠가 너를 밀어주지 않아서 서운하겠다.” 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이해를 잘 못해줘요. 집안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하니까.....” 라고 대답했다.

중학교에서도 성적이 좋았지만 일찍 취업해야만 하는 가정 형편 때문에 우리 고등학교 실업계인 전자과에 들어온 아이다. 군교육청에서 주최하는 독후감대회에서 제시된 책 제목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생각하고 준비한 것처럼 원고지에 척척 글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끝 부분이 좀 엉성했지만 그래도 후회없이 썼어요. 선생님.” 하면서 자신감을 내보이길래 웃음으로 대답해줬다.

소설 속 난장이 아버지처럼 달나라로 날아가고 싶지만 무거운 쇠공으로는 다시 땅 아래로 곤두박질할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빗대면서 썼다고 한다.

농촌의 아버지들이 안고 사는 쇠공을 이해하는 아이가 대견하다기 보다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선생님. 정말요? 제가 최우수상이라구요? 히야~” 오늘 아침 수상 소식에 아이는 활짝 웃는다. 곁에 계신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서 어깨를 두드려 주시면서 안아주신다. “조선생! 그 애 좀 잘 키워봐.” 교감 선생님도 격려를 보내주시고 있다.

1주일 후에 있을 도대회를 준비해야 한다. 도 교육청에서 제시한 도서 목록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말고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지도밖으로 행군하라, 나의 아름다운 정원, 구운몽,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가 있다. 또 이것 말고도 신영복 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와 ‘전태일 평전’도 있다.

대회날 무슨 책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10권 가량의 책을 모두 읽어두고 가닥을 미리 잡아두는 것이 기본이다. 각 군에서 선발된 독후감 잘 쓰는 아이들이 모이는 도 대회에서 상을 못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어떠리. 저렇게 좋은 책들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며 토론을 하는 것이 더없이 즐겁다.

어제는 가을 소풍으로 가까운 바닷가로 갔다. 체육복과 교복을 입고 1시간 넘는 길을 걸어서 도착한 바닷가. 준비해간 노래방 기기가 나오지 않자 기다리는 동안 쓰레기 봉투를 들고 군말없이 쓰레기를 주으러 다니는 아이들. 기숙사에서 싸준 김밥을 먹고, 바쁜 어머니 혹은 할머니 그것도 아닌 저희들 스스로 싼 김밥을 먹는 아이들 너머로 가을 파도가 치고 있었다.
서울 처녀였던 조경선 선생님은 1998년 결혼과 함께 전남 고흥으로 내려와 현재 고흥 도화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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