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 독단협상→농민 반발→무마용대책 부랴부랴→비준 강행

한·아세안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농민반발이 가시화되고 있다. 농업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간다면 한·칠레 FTA나 쌀 협상에서 봐왔던 것처럼 정부의 독단적인 통상협상 타결과 농민반발, 농촌의원들이 중심된 비준 거부, 농심 달래기 수준의 피해대책 제시, 국익을 내세운 비준안 처리강행 등의 구태가 재연될 판이다. 농업통상 때마다 농민들이 반발하는 이유와 개선책을 짚어봤다.

농업통상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 국론분열 양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행정부 독단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통상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쌀비준안이 통외통위에 상정되는 것을 민주노동당 위원들이 몸으로 저지하고 있는 모습.

통상 현안마다 번번이 '악순환' #농민반발 이유는 한·칠레 FTA, 농민반발로 1년여 끌다 비준쌀 재협상 '이면합의' 논란 속 국정조사까지농업분야 대폭 양보 '아세안FTA' 다시 논란 통상협상 과정에 농민단체를 비롯해 이해당사자들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 농민반발의 큰 이유다. 우리나라 최초인 칠레와의 FTA는 지난 2002년 10월 24일 실무차원에서 협정을 타결한 후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를 10여일 남긴 지난 2003년 2월 15일 협정서에 서명을 했다. 이후 비준안 통과된 2004년 2월 16일까지 1년여 동안 농민들은 대규모 상경시위와 단식농성, 기자회견 등 100여 차례가 넘는 집회를 열며 거세게 반발했었다. 갓 출범한 참여정부가 ‘선 대책, 후 비준’이란 원칙을 세우고 FTA지원특별법을 제정, 농특세 과세시한 연장, 부채특별법 개정, 삶의 질 향상법 제정 등의 대책을 제시했지만 농민들은 비준안이 통과되는 날까지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농민들은 농업강국인 칠레와의 FTA는 대상국 선정부터 잘못됐다고 주장했었다. 또한 협상진행과정에 농민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영향평가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지원대책도 못 믿겠다며 목소리를 높였었다. 이는 국회비준을 놓고 논란을 빚고 있는 쌀 협상에서도 나타나는 문제다. 한·칠레 FTA로 홍역을 치른 정부가 쌀 협상에 있어서는 김충실 경북대 교수를 민간대표자격으로 동행시키고, 협상진행과정에 대해 국회와 농민단체에 설명하는 등 협상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력을 일부 기울였다. 하지만 협상이 진행 중이란 이유로 국회 상임위에서 조차 내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제대로 된 국내검증절차 없이 지난해 12월 30일 WTO(세계무역기구)에 이행계획서를 제출했다. 이후 지난 4월 12일 정부가 협상결과를 공개되자 농민단체와 국회의 반발에 부딪혀 통상현안과 관련해서는 최초로 35일간의 국정조사까지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대로라면 국내 쌀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부가합의를 통해 쌀과 상관없는 품목에 대해서 개방 폭을 확대해줬다는 논란에 휩싸여 지금까지 국회비준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일에는 한농연과 한여농, 전국농민연대와 전국농민단체협의회 등 주요 농민단체 대표자들이 외교통상부 앞에서 한·아세안 FTA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농민들은 한·아세안 FTA가 농업분야 개방 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농업계와의 논의 없이 외교통상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즉, 지난달 29일 열린 한·아세안 경제장관회의에서 양측이 관세인하계획의 3가지 주요쟁점에 대해 잠정적 타협안을 도출했는데 이것이 농업분야의 개방 폭 확대와 연계돼 있다는 것이다. 잠정타협안은 2010년까지 관세 90%철폐, 민감품목군은 품목수 10%기준과 수입액 10%기준 동시적용, 초민감품목은 HS6단위 150개(현행 관세유지 40개)와 수입액기준 2%미만으로 한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농민들은 이번에 도출한 잠정타협안이 당초 우리 측 양허안보다 후퇴한 것이며, 이대로 타결될 경우 국내농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제안이란 것이다. 당초 우리 측 상품양허안으로 HS6단위로 초민감품목 233개, 현행관세유지(양허제외) 84개를 하자고 했던 것에 비해 각각 36%와 52%가 축소된 것이다. 비율로 보면 전체품목대비 초민감품목은 4.21%에서 2.7%, 양허제외는 1.52%에서 0.72%로 축소된 것이며 과수와 육류, 쌀을 제외한 곡물류의 경우 2015년까지 20% 또는 50%를 감축하는 초민감품목에 넣었으나 잠정타협안에서는 축소됐다고 농민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농민단체 참여 실질 보장당사자간 갈등 사전 조정국회 심의후 협상 타결을 #개선책은 농업통상과 관련 농민단체들은 협상대상 선정이나 협상추진 등을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행정부가 협상을 사실상 끝내놓고서는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 만큼 비준을 해야 한다고 국회를 압박하는 통상시스템으로는 협상과정에 이해당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농민단체들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통상시스템을 개선하고 필요하다면 통상법을 만들어 국회가 행정부의 독단을 견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손재범 한농연 정책실장은 “농민단체와 관련 전문가와의 심도 있는 협의를 통해 농민부문 이해당사자들의 의사가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통상협상에서 사전형향분석, 협상대상국 선정, 협상전략 수립, 협상안의 심의·의결, 국내대책 마련 등에 있어 농민단체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통상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박웅두 전농 정책위원장은 “통상협상에 따른 국론분열의 원인과 책임은 통상협상을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판단, 추진해도 이를 견제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라면서 “한·칠레 FTA와 쌀 협상 등을 통해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상정책을 추진했을 때는 농민들의 반발과 사회적 갈등을 불러온다는 것을 경험해놓고도 여전히 국민들을 정책동반자가 아닌 정책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통상협상에 앞서 이해당사자와 사전협의하고, 협상 각 단계별로 사전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국내대책을 보완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통상협상의 기본적인 틀과 내용을 사전에 심의, 검토하고 행정부는 국회가 위임한 범위 내에서 협상절차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통상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통상시스템 개선과 관련해서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농민단체의 주장을 담은 통상법 제정안을 정기국회 내에 발의할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통상법 제정을 위한 실무를 맡고 있는 이성원 비서관은 “초안은 마련된 상태며 10월말이나 11월 초에 공청회를 거친 후 정기국회 내에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면서 “통상정책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행정부가 수립하면 채택여부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서 결정하는 것이 통상법의 골격”이라고 설명했다. 통상법 제정안에는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통상정책위원회를 구성해 협상관련 정책을 결정하되, 산하에 각계대표와 정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민간위원회를 만들어 사전영향평가와 사전대책 등을 수립하고 사회적 갈등도 조절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상현seos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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