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국 요구 예상보다 과도…쌀협상 ‘지지부진’정부 ‘실리’ 내세우며 관세화 수용 가능성 흘려쌀 관세화유예협상이 상대국과의 구체적인 수치를 주고받는 단계로 넘어간 가운데 정부 관계자들이 서로 엇갈린 협상전략을 내놓고 있어 농민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허상만 농림부 장관은 쌀협상에서 우리의 원칙인 관세화유예를 관철할 것을 강조한 반면 외통부 관계자는 실익차원에서 관세화도 검토하겠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특히 윤장배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은 수입쌀의 민간유통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농민반발을 사고 있다. 최근 불거진 정부당국자의 쌀 관세화유예협상관련 발언내용과 그 배경, 농민반응 등을 살폈다.농민단체 “정부 협상책임 방기” 비난관세화유예·국영무역 원칙 고수 주문▲발언요지=허상만 농림부장관은 지난 4일 월례조회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쌀 협상이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 “상대국은 무리한 요구를 할 수 밖에 없고 우리도 무리한 주장을 관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쌀 재협상에서 우리측 대표단을 이끌고 있는 이재길 외통부 DDA협상대사는 3일, 기자회견을 통해 “쌀 관세화유예협상이 최대한 유리하도록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며 “쌀 협상에서 관세화유예를 기본입장으로 하고 있지만 상대국 요구조건이 과도할 경우 실리 확보차원에서 재검토하겠다”며 관세화 개방에 무게를 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윤장배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주요 쌀 협상국인 미국과 중국 등에서 수입쌀의 소비자시판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관세화유예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수용해야 할 것 같다”는 뜻을 밝혀 농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발언배경=정부관계자들의 발언내용이 엇갈린다고 해서 쌀 협상전략에 대해 정부 내에서 이견이 있거나 농민반발을 무릅쓰고 협상전략을 전면 전환했다고 볼 증거는 없다. 정부가 최근까지 일관되게 밝혀온 쌀 협상의 기본입장은 관세화유예다. 그러나 정부는 상대국조건이 과도할 경우 쌀 산업에 대한 피해 최소화 등 실리확보 차원에서 입장을 재검토할 것이라는 단서조항을 항상 붙여왔었기 때문이다. 다만, 발언내용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미국이나 중국 등 상대국들이 우리 측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어 협상이 순조롭지 못하다는 것이다.일정상으로도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우리정부는 9월말까지 협상참가국들과의 합의를 끝내고 12월말까지 3개월간 WTO회원국들의 검증을 받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협상성과는 별로 없다. 협상의 진척이 없는 것은 우리 측이 협상에 불성실하게 임했다기 보다는 상대국들의 무리한 요구가 큰 요인이다. 미국, 중국 등 상대국들은 우리나라의 관세화유예조건으로 짧은 유예기간 설정과 대폭적인 MMA(최소시장접근)물량 증량요구에서부터 실질적 시장개선, 검역완화, 입찰규격 개선, 타 품목과 연계요구 등 무리한 조건을 내걸고 있다. 따라서 정부 관계자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만큼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있는 협상 상대국들에게 관세화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협상카드를 국내언론을 통해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재길 대사가 지난달 25일 WTO국민연대가 주최한 쌀 토론회에서 “한 방향(관세화유예)의 목소리만 높으면 한국정부가 관세화유예를 안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판단해 상대국의 요구조건이 올라간다”고 설명한 것도 이런 취지일 수 있다.윤장배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의 수입쌀 소비자시판허용에 대한 언급 또한 협상참가 9개국 모두가 이것을 집중적으로 요구하고 있어 국영무역형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구체적인 수치를 주고받는 협상에 앞서, 농민반응을 살펴보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분석이 가능하다.▲농민반응=농민단체들은 반드시 관세화유예의 원칙을 지키고 쌀수입관리 형식으로는 국영무역원칙을 지킬 것을 주문하고 협상이 어렵다는 이유로 관세화를 언급하는 것은 책임방기라는 입장이다. 한농연 관계자는 “국내 시장안정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관세화를 유예하고 추가 수입물량은 절대 없어야 함은 물론, 전량 정부가 수입해 관리하는 국영무역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며 “만약 상대국들이 터무니없는 요구로 쌀 시장개방에 대한 압력을 행사한다면 농민들은 소비자들과 함께 해당국가의 쌀 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서 생산한 모든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강력히 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농 또한 3일 성명을 통해 “수입쌀이 민간업자들에 의해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된다면 국내 쌀 시장은 예측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식량주권을 포기하려는 일체의 내외세력들을 결단코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상현seos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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