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전 전북도 ××시의 시민회관. 농업기술센터의 지도직 공무원들이 행사장에 동원됐다. 이들은 행사장 보조원으로 의자를 나르고 주변정리를 하고 있었다. 당시는 수확철이어서 쌀 한톨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탈곡을 서두르도록 현장지도를 한창 펼쳐야 할 시기임에도 엉뚱한 일에 동원되고 있었다. 농업기술센터 Y모 지도사는 “현재 지도직공무원들은 자치단체의축제나 각종 행사에 매달려 실질적인 농업 기술지도는 물론 농민들과의 접촉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축제 준비에서부터 축제가 끝날 때까지 전 기간에 걸쳐 얽매여 있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이들은 이외에도 풀베기를 비롯 거리질서 확립차원의 교통정리, 주차단속, 심지어 현장체험 차원에서 새벽녘 환경미화원과 함께 쓰레기차를 따라다니는 등 농업과는 동떨어진 일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몇 년전 전남도 ××군에서는 지도직 공무원이 지방세 영수증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닌 적이 있어 주위의 비웃음을 산적도 있다. 이들은상부의 지시로 지방세를 거두는 일에 동원된 것이다. 농민 김모(46·안성시 고삼면 쌍지리)씨는 “농촌지도사들이 지자체의 각종 잡무까지 떠맡고 있어 영농상담과 지도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며 “각종 병해충이 발생하고 작물생육에 이상이 있어도 전문기술지도사에게 상담을 받기란 어렵다”고 말했다.농민 이모(42·김포시 양촌면 유현리)씨도 “농업기술연구 전문기관으로서의 역할보다, 행정보조업무 기관으로 전락, 시장·군수 눈치만 살피고 있는 농촌 지도사들이 불쌍하다”며 “농민들을 위한 체계적 농업기술 지도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행정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지적했다. 그런데도 구조조정이나 인원감축에는 농업분야가 1순위로 퇴출됐고,지도직은 행정직에 밀려 더 큰 구조조정의 바람을 맞아야 했다. 전국읍·면단위의 상담소는 현재 대부분 폐지됐다. 더구나 농업기술센터는 시장·군수의 생각에 따라 조직이 바뀌었다.축산분야를 시·군청으로 내놓은 곳이 있는 반면 농촌인력업무가 옮겨와 통합된 곳도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연구사업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군청으로 넘긴 곳이 있으며, 시단위지역은 대부분 농업기술센터 자체가 사라지고 산업과에 2∼3명 근무하는 것이 고작이다. 경기도 구리시의 경우에는 농촌지도직 근무자가 아예 없다. 이러한 농촌 지도사들의 문제점은 문민정부가 추진한 지도직의 지방직화 이후 더욱 심화됐다. 김성훈 농림부 장관도 최근 이같은 농촌지도직의 변화에 대해 많은불만을 토로하며 지도직의 지방직화를 ‘문민정부의 최대 실패작’으로 꼽고 있다. 개편 결과로 지도직들이 농림부의 지시보다 시장·군수의 지시에 매이게 됐다는 것이다. 구제역과 영동산불 등 긴급사안이 터져 김 장관이 현장시찰에 나섰 으나 지도직 공무원들은 농림부의 지시사항을 따르지 않고 시장군수의지시사항을 수행하는데만 투입되었을 뿐 현지에서 모습조차 보이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지난 2일 농림부 회의실에서 한농연 임원진과의 간담회에서 이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한농연도 이날 김 장관에게 농림부-농촌진흥청-도농업기술원-농업기술센터로 연결되는 농촌지도사업 조직체계의 일원화를 건의했다.행정기관과의 상호 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도 큰 문제다. 전국적으로 벼멸구가 극성을 피우던 3년전, 농림부와 농촌진흥청이피해 실태를 조사하고 대책을 강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도 당시 가장 벼멸구피해가 심했던 경기북부, 영호남지역의 현지 상황이 제대로보고되지 않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농업기술센터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경기도청의 인력담당은 “원활한 조직개편을 위해서는 농업행정은시·군이 맡고 농촌지도업무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농촌진흥청 등 일부에서 광역지도체계의 도입 등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조직개편 논의가 없다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김성훈 장관도 농민단체 차원의 정치권 설득만이 개편의 지름길이라고 밝히고 있어 향후 정책방향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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