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포함한 공영도매시장에 도매상제도를 도입하고 경매제와 병행하겠다는 국민회의 농수축산물유통개혁정책기획단의 ‘유통개혁대책’에 대해 농민들의 반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농민들은 “생산자의 거래교섭력이 약한 상황에서 도매상제도의 도입은 일부 품목의 운영에 문제가 있더라도 지금까지 어렵게 정착된 경매제를 송두리째 붕괴시키고 이전의 위탁상제로 회귀, 도매상의 이윤만 확대시켜 결국 농민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국민회의 개혁안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과 <>

국민의 정부는 출범 직후 고비용 저효율의 유통구조를 바로잡아 농어민들의 이익을 높이고 국민생활의 안정을 기한다는 차원에서 농수산물 유통개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농림부는 농림부, 학계, 생산자대표, 소비자대표, 유통업계 등으로 ‘농산물유통개혁위원회’를 구성하고 산하에 ‘실무대책단’을 두어 여러번의 회의와 공청회를 통해 지난 6월30일 ‘농산물유통개혁대책’을 발표했다.

농림부 유통개혁위가 마련한 대책은 그동안 논란이 계속된 도매시장 거래제도와 관련, △중앙도매시장은 경매제도를 원칙으로 하되, △시장여건과 품목 특성을 감안해 수의매매품목을 대폭 확대하고 △지방도매시장은 경매제나 도매상제중 개설자가 자율 선택하며, △도매상제를 두는 경우에도 거래의 투명성 확보와 대금의 안정적 정산을 위한 장치를 동시에 강구하도록 했다.

그러나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원회 소속의 ‘농수축산물유통정책기획단’은 지난 8월21일 국민회의 정책위원회 명의로 “가락시장을 포함한 공영도매시장에 도매상 제도를 도입해 경매제와 병행하겠다”는 내용의 매우 상반되는 내용을 발표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국민회의 기획단은 14명으로 이뤄졌으나 유통개혁의 목표가 농민과 소비자의 편익증진인데도 농민대표나 소비자대표는 없이 관리공사가 2명, 삼성경제연구소나 킴스유통경제연구소, 한국능률협회 컨설팅 등이 대거 포함되는등 위원 구성부터 편향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공청회도 개최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된 점과 여당측 위원회로서 행정부와의 정책기조 협의가 필요한데도 농림부 개혁위의 대책안과 많은 차이를 보여 사전 협의가 충분치 않았다는 점도 비판받고 있다.

<> 각계 반응 <>

국민회의측의 개혁안에는 서울시 농수산물도매시장관리공사, 알타리·마늘· 파·양파 등 상장경매가 잘 안되는 품목의 중도매인 일부, 시장내 일부민간연구소, 일부 근교시설채소 조직 등이 찬성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한농연과 농협을 비롯한 농민단체는 국민회의안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지역의 작목반 등 일선 농민들도 반대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도매인 중에서도 과일류와 오이 등 과채류 중도매인들은 도매상제 도입에 회의적이다. 강원 홍천군 관내 작목반장, 영농회장 등 5백90명은 최근 “생산자가 고품질 농산물 생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려면 도매시장에 출하만 하면 가격결정이 투명하고 대금정산이 보장되는 경매제로 운영돼야 한다”는 건의서를 관계요로에 제출했다.

또 경기, 강원, 충남북 7백81개 배 생산농가와 16개 영농법인의 조직인 중부 배작목반도 “검증되지 않은 도매상제도를 도입하면 농민이 피해를 본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는 등 현장 농민들의 반대가 거세다. 농협 공판장협의회도 도매상제도 전면도입은 재검토돼야 한다는성명을 발표했다.

<> 도매상제 전면 도입의 문제점 <>

우선 동일시장에서 경매제와 도매상제가 병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도매인에게 양 제도중에서 택일하게 할 경우 상인의 속성상 경매제에 비해 영업상 절대적으로 유리한 도매상을 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중도매인과 도매상의 영업형태를 비교할 때, 농산물의 가격결정은 경매제도 하의 중도매인은 공개경쟁 방식이나, 도매상으로 바뀌면 도매상과 농민이 협의를 하게 되고, 그 가격결정의 헤게머니는 도매상이 쥐게 된다.

상거래의 위험부담 측면에서는 경매제의 경우 중도매인이 자기계산에 의해 부담을 지는 반면 도매상제는 출하자의 계산에 의해 출하자에게 전가된다. 상업이윤의 경우 경매제에서 중도매인의 몫은 통상 4~10%인데 도매상제는 4~7%의 상장수수료에 또다시 4~10%가 가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더욱이 경매제는 세무자료가 노출되나 도매상은 세무자료의 은폐가 가능하다. 도매상제를 실시할 경우 자기물량을 확보한 도매상은 도매시장 법인이 실시하는 경매에 참여를 기피하게 돼 경매제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남아있던 중도매인들도 결국 도매상 요건을 취득하려는 활동을 하거나 암암리에 산지 수집활동을 하는 등 경매제의 붕괴는 예약된 것이다.

또한 위탁상의 경우 선도자금, 숙식제공, 애경사 부조 등 산지고객과 특수한 신분관계를 유지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객의 확대를 꾀하는 수완가이며, 이익극대화를 위해 특정물품의 가격보장 등 상술이 뛰어나 경매제도하의 도매법인보다 집하능력이 강하다. 이런 강점 때문에 이들의 세력기반은 막강하며, 이와 상대해야 하는 출하농민은 약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만일 동일한 시장내에서 일부 중도매인만 도매상으로 선정할 경우 남아있는 절대 다수 중도매인의 불만이 발생하고 거래량이 큰 중도매인이 법인에서 집중적으로 이탈하면 가격폭락이나 유찰 등 시장의 혼란이 불을 보듯 뻔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도매상제로 바뀔 경우 생산규모가 영세하고 시장교섭력이 약한 농민이 도매상과 직접 수탁거래를 할 경우 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보장하기 어렵다.

표준규격화가 미흡하고 저온유통체제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하는 도매상제도는 미국, 유럽 등의 선진화된 도매시장이 아니라과거 위탁상 체제로 전락할 것이라는게 대다수의 분석이다. 도매상제도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송장검인제, 기장 의무, 정산법인 설립방안을 얘기하고 있지만 수많은 도매상을 대상으로 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따라서 현 단계는 경매의 보완 강화를 통해 공정한 가격형성과 거래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품목 특성에 따라 경매가 잘안되는 것은 상장예외를 인정하면 된다. 굳이 도입하자면 새로 설립되는 시장이나 지방시장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한 다음 그 결과를 평가한 뒤 도입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이상길 기자>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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