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표비닐로 알려진 ㈜일신화학공업이 농협중앙회와 농업용 필름 계통구매계약을 체결하고도 제품하자관련 소송을 일선 농가를 상대로 직접 제기해 논란을 빚고 있다. 수출국화와 수출가지 시설재배를 하던 부산시 강서구 강동농협 조합원 11명은 일신화학의 농업용 PE(폴리에틸렌)필름을 2001년 10∼11월 강동농협을 통해 계통구매로 구입했다. 그러나 이 필름을 씌운 비닐하우스에서 11월경부터 과도한 안개발생으로 곰팡이병·백녹병 등이 창궐하고, 물방울이 심하게 맺혀 생육장애가 발생했다. 결국 이들은 국화와 가지를 수출하지 못하고 헐값에 내수시장에 내며 큰 피해를 입었다

지난 2일 부산시 강서구 김인수(52)씨가 일신화학이 제기한 물품대금 소송에 대한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의 조정조서를 보여주며 납득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부산 강서구 피해 농가 농협에 지불정지 요청생산업체 보상 미루다 2년이나 지나 소송 제기농민 합의거부 불구 ‘조정성사 판결’ 의혹 가중 이에 농민들은 피해원인을 필름하자로 보고 2002년 4월 강동농협에 일신화학 필름대금의 지급정지를 요청했다. 피해조사를 한 강동농협은 농민들의 요구에 따라 농협중앙회에 PE필름 하자신청과 대금지급정지 공문을 보냈다. 일신화학 직원들도 피해발생 직후부터 수차례 현장을 방문, 상황을 확인했으므로 제품하자에 대한 피해배상을 농민들은 낙관했다. 그러나 일신화학은 제품하자를 제기한 농민들과의 보상합의를 2003년 7월에서야 본격적으로 진행, 필름품목 중 풍요필름은 물품대금의 20%를, EVA필름은 50%만을 일신화학에 수금해주고 2003∼2004년에 일신화학 필름 구매시 20%를 할인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한 합의서를 11명 중 9명의 농민들과 작성했다. 그러나 김융행(61)·김인수(52)씨는 작물피해에 대한 사과조차 없이 일신화학이 미약한 합의안을 제시한다며 합의를 거절했다. 이에 일신화학은 이들 두 농민에게 2003년 8월 채무독촉 우편을 내용증명으로 보냈고, 2004년 6월 일신화학의 소송 제기로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물품대금명의 법정다툼이 시작됐다. 농민들은 일신화학이 9명의 농민들과 합의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제품하자 때문에 대금지급정지를 농협에 요청했으며, 필름구매 당사자가 강동농협이어서 일신화학에는 물품대금 청구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신화학은 농민 9명과의 합의가 제품하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관리 차원의 할인행위라고 반박했다. 또 일신화학이 강동농협에게 물품대금을 수금할 수 없게 된 것은 농민들의 지불정지 요구 때문이므로 작물피해원인이 필름하자임을 농민들이 입증하지 못하면 물품대금 청구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은 4차례의 법정출두 끝에 지난 4월 21일 조정이 성립된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조정내용은 이미 합의를 본 9명 농가와 같은 수준으로 두 농민이 물품대금을 이 달 말까지 지급하고 소송·조정비용은 각자 부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농민은 일신화학이 조금도 양보치 않은 이 조정안에 동의한 적이 없음에도 조정이 성립된 데 대해 납득할 수 없다고 지난 2일 주장했다. 강제조정일 경우 항소라도 할 수 있으나 이는 항소조차 불가능해 판사의 착오 또는 직무유기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판사와 싸울 수도 없어 꼼짝없이 당하게 됐다는 것. 더구나 계통구매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며 객관적으로 3차 공판을 진행해오던 판사가 최종변론에서 돌연 교체됐고, 묘하게도 그 시점이 중재안 모색을 이유로 일신화학이 쌍방 변론불참을 요청해왔던 지난 3월 이후인 점에 대해 농민들은 의구심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강농농협 박대조 조합장은 “일신화학이 계통구매계약 거래 당사자인 농협중앙회와 강동농협이 아니라, 법을 모르는 농민들에게 직접 소송을 제기한 것은 물론 하자의 증거확보가 어렵도록 2년이 지나서 소송을 제기한 것도 문제”라며 “하자처리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중재에 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돼 있는 구매납품계약서(농협중앙회와 일신화학이 2001년 5월 체결) 제14조 3항을 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소송은 이 계약서 제25조에 따라 일신화학 주소지 관할 법원에서 진행됐는데, 정작 중요한 계약위반에 대해 농협중앙회는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추궁했다. 이에 대해 일신화학은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중재요청은 농협이나 농민들이 하면 되는데 안한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파손·수량부족·규격상이·변질 등의 사유가 아닌, 결로와 안개로 인한 작물피해는 계약상 하자처리의 영역이 아니다”며 “농협중앙회는 수탁사업자이기 때문에 각종 소송의 당사자는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농연부산시연합회 이홍대 회장은 “믿을 수 있는 물품구입을 위해 농협이 농기자재 피해분쟁의 핵심을 비켜갈 것이 아니라 모든 조직력을 동원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강조했다.
구자룡kucr@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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