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덩이 된 터전…잿빛 한숨만

정부가 대규모 산불피해를 입은 강원도 양양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고성군은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본격적인 피해복구지원에 들어갔다. 정부는 지난 5일 양양과 고성지역에 대해 ‘재난사태’를 선포한데 이어 7일에는 양양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산불피해상황, 정부지원대책 및 개선사항, 현장분위기 등을 전한다.

화마에 집과 축사 등 70여평의 건물 전체를 잃은 양양군 강현면 장석자 씨가 넋을 잃은 채 재로 변한 집터를 바라보고 있다.

#양양·고성 현장 34시간 26분만에 ‘완전 진화’ 성공 200~300년 된 소나무 군락 훼손“이젠 송이채취도 어려워” 발동동250ha의 산림을 잿빛으로 물들인 양양산불은 6일 오전 발생 34시간 26분만에 완전히 진화됐다. 6일 오후 1시 큰 불길이 잡힌 산불현장에는 소방대원, 군인, 의용소방대, 공무원 등 밤 세워 산불진화에 나선 사람들이 마을주민들과 주먹밥과 빵 등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었다. 아직도 초속 20m가 넘는 강풍이 불어 흙먼지와 재로 눈을 뜨기가 어려웠다. 현장에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전소된 가옥에서 아직도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집과 축사 등 70여 평의 건물이 타버린 강현면 방축리 장석자(52) 씨는 무너져 내린 집터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만 닦고 있었고 이웃집 김모 씨는 “장씨는 2년 전에 남편과 아들을 사고를 잃고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이번 에 또 변을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다.마을전체가 불타버린 강현면 적은리 장성욱(68)씨 부부는 이번 산불로 경운기 2대, 이양기 1대, 탈곡기 1대, 양수기 3대 등 모든 농기계를 잃어버렸으며 5000평 논에 심을 못자리용 상판과 볍씨가 불타버렸다. 장씨는 “집은 다시 지으면 되지만 200~300년 된 뒷산의 소나무가 불타버린 것이 더욱 안타깝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곳 주민들은 “양양송이의 터전인 소나무 군락이 이번 산불로 크게 훼손됐다”며 “해마다 농가들은 송이채취로 1400만원 정도의 농외소득을 올렸는데 앞으로 30년 이상은 송이채취가 불가능하다”며 아쉬워했다. 사계절 관광객이 찾아오는 낙산사는 불에 그슬린 입구현판만 남아 이곳이 낙산사라는 것을 알려줄 뿐, 모든 것이 불타버렸다. 신도들과 조계종에서 파견된 자원봉사자들이 경내를 치우고 있었으며 평소 이곳을 찾던 신도들은 스님들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산불의 무심함을 원망했다.강원도 동해안지역 주민들은 96년 3762ha를 태운 고성산불과 2000년 2만3794ha를 태운 영동산불, 2002년 2조원이 넘는 재산피해를 낸 태풍 ‘루사’, 2003년 태풍 ‘매미’ 등 끊이지 않는 자연재해로 고통을 겪고 있다. 소방경력 20년이 넘는 김만하 속초소방서 소방관은 “대형산불을 진화하면서 가장 어렵고 아쉬운 게 초기진화”라며 “지방자치단체는 소방장비 강화보다는 산불감시요원을 늘려 초기진화에 전력해야한다”고 지적했다.사천리 최선모(51) 이장은 “새벽 1시50분께 군청으로부터 대피지시를 받고 주민들을 일일이 깨워 마을회관으로 대피시켜 인명피해는 면했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삶의 터전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피해주민들의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 신속하고 충분한 보상을 취해야한다”고 당부했다.#산불진화에 나선 사람들민관군경 입체작전 ‘조기진화’진화 헬기 38대·1만여명 동원이번 산불이 강풍을 타고 번지면서 지난 2000년 14일 동안 6900만평을 태워버린 대형산불로 번지는 것을 염려했으나 산불재해대책본부 지휘부와 민·관 ·군·경의 입체작전으로 조기에 진화됐다. 5일 아침 강현면사무소에 산불재해대책본부가 설치됐고 이진호 군수와 김진선 강원도지사가 현장으로 달려왔다. 이곳에서 군 생활을 했던 박홍수 농림부장관도 지형의 특성과 바람 등을 고려해 소방헬기와 소방차 등을 신속하게 이동배치 시켰다.이번 산불진화에는 진화헬기 38대와 1만여명의 진화요원이 투입됐으며, 이상덕 한농연양양군연합회장과 회원들도 산불진화에 나섰고 6일에는 서정의 한농연중앙회장과 김수만 강원도회장이 피해주민들을 찾았다. 또 대한적십자사는 의료봉사활동을, 농협·농업기반공사 등도 성금과 성품을 전달했고 통신회사들은 전화를 무료로 설치했다.☞ “주택 전파시 동당 500만원 지원”#피해 상황·정부 지원 대책양양 354억 피해…‘특별재난지역’ 선포80%이상 피해 농가에 500만원 위로금재해대책 농업경영자금 100억원 투입영농자금상환 1년 연기·이자 면제 지원▲피해상황=강원도 양양군의 경우 지난 4일 23시 50분 양양읍 강현리 인근야산에서 최초 발화한 후 5일 11시 30분경 불길이 잡혀 잔불정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오후 2시경부터 재 확산되면서 산림 250ha과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낙산사 원통보전 등 사찰건물 13동과 보물 제479호인 낙산사 동종, 민가주택 160동과 정미소 등 건물 246채를 태우고 지난 6일 11시경에 진화됐다. 이번 산불로 양양군에서만 134세대, 34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농작물과 축산피해도 잇따라 모두 353억6300만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고성산불은 지난달 30일 북방한계선 이북지역에서 발화돼 5일 12시 20분경 남한지역으로 확산, 산림 150ha를 태우고 6일 11시경 진화됐다.이 외에도 올 식목일이었던 지난 5일에는 충남 서산 등 전국적으로 23건의 산불이 발생해 430ha(잠정집계)의 산림이 손실을 입었다.▲정부 대응=정부는 7일 중앙안전관리위원회(위원장 이해찬 국무총리)의 심의·의결을 거친 후 노무현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양양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고성군은 피해가 대부분 비무장지대 산림이고 인명피해 등이 없어 제외됐다.시·군·구 지역에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총재산피해액이 3000억원 이상이거나 이재민수가 8000명이 넘어야 한다. 양양지역의 경우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규모는 이에 미치지 못하지만 거듭된 수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정부는 농림부와 건교부, 소방방재청, 문화재청, 산림청, 강원도청 소속 공무원 22명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구성 7일부터 11일까지 현장에서 주택, 비닐하우스, 농작물, 문화재 등의 피해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한다. 또한 오는 1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회의 및 심의를 거쳐 지원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지원 대책=양양지역의 경우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농림어업이 80%이상 피해를 입은 이재민(농업인의 경우 2ha미만 경작자)은 가구당 500만원, 농림어업이 50%이상 80%미만의 피해를 입은 경우 가구당 300만원의 특별위로금이 지원된다. 또 주택전파시 동당 500만원, 주택반파 동당 290만원의 특별위로금을 지원된다.또한 대파대, 농약대, 시설복구비 등이 일부 지원되고 주택이나 농경지복구, 농림시설, 가축 및 누에입식 등의 지원에 있어 자부담 비율도 일부 줄어들게 되며 생계지원, 학자금면제 등의 간접적인 지원도 있다. 이와는 별도로 농림부는 8일 산불피해 농민들에게 농축산영농자금상환 기간을 1년간 연기해주고 피해정도에 따라 1~2년간 이자도 면제해 주기로 했다. 재해대책농업경영자금 100억원을 지원하는 등의 긴급대책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 재해대책농업경영자금은 호당 500만~5000만원 범위에서 필요영농자금의 50%를 연리 3%로 1년간 지원받을 수 있다. 아울러 산불피해농가의 부채를 연리 3%, 3년 거치 7년 상환조건의 경영개선자금으로 대체해주기로 했다. 이외에도 영농에 필요한 육묘상자, 비닐, 골재 등과 경운기, 이앙기 등은 농협중앙회에서 무상으로 즉시 지원해주며 종자는 종자관리소에서 지원해주는 대책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농림부는 농진청과 농업기반공사,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2개팀 10여명을 현장에 파견해 가축 사체처리와 검역 활동을 벌이고 영농복구 기술 지도활동도 펼치기로 했다.#개선할 점산불 확산 경로 파악…길목서 진화강풍에 강한 소방용 항공기로 교체임도 확충·전문 진화인력 육성해야산림전문가와 농민단체 관계자들은 이번 기회에 산불예방과 진화시스템 등을 재검토해 피해가 발생치 않도록 근본적 대책을 세울 것을 주문했다.석현덕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산림정책연구실장은 “동해안 지역은 봄철 바람이 백두대간을 넘으면서 고온 건조하고 강해지는 푄현상 때문에 대형산불이 자주 발생한다”면서 “이를 감안할 때 전국에 산재돼 있는 산불예방과 진화를 위한 인력과 장비를 동해안 지역에 집중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석현덕 박사는 “미국은 시뮬레이션(모의실험) 등을 통해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불이 발생할 경우 미리 피해규모와 산불이 확산되는 경로를 예측, 길목을 지키는 방식으로 진화작업을 한다”면서 “우리나라는 산불을 따라가면서 진화를 하기 때문에 우왕좌왕하기 일쑤고 강풍이 불어 닥칠 경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산림정책 전문가는 “산불진화에 이용되는 헬리콥터의 경우 강한 바람이 불 때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면서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에 보급돼 있는 소방용 항공기로 교체하는 것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손재범 한농연 정책실장은 “산불피해를 당한 후 복구를 지원하는 것은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는 사후약방문식 처방”이라면서 “신속한 장비이동을 위해서 임도를 확충하고 산불예방전문가를 육성하는 등 이번 기회에 산불예방과 진화 등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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