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허상만 농림부장관은 정례브리핑에서 비농민의 농지소유 기준을 현행 300평에서 900평으로 확대하는 것은 물론 농지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가 있은 지 1주일도 못돼 농촌지역은 벌써 농지투기 조짐이 보이고 있다. 농촌지역에 농지 구입을 위한 도시인들의 차량행렬이 이번 주말 들어 급격히 늘었다는 것이다. 매년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농지가 이번 발표로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투기조짐이 일고 있는 농촌현장을 찾아본다.“규제 완화되면 투자 가치 있을 것”“외지인 대거 몰려 농지 구입 타진“시·군청 들러 도시계획 등 확인도지난 17일 평창과 강릉의 농촌지역에 외지의 고급승용차들이 몰려들었다.평창군 진부면 M마을에는 서울과 경기 번호판을 단 승용차 5대가 들어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부동산업자의 안내로 지역의 농경지를 카메라에 담았다.마을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이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알아들었다. 강릉시 사천면 N마을 이장댁에도 서울에서 내려온 승용차 4대가 서 있었다. 이들은 이장의 안내로 팔려고 내놓은 농경지를 돌아보고 있었다. 이 지역 농지가격은 진흥지역이 평당 5만원 정도, 준농림지는 18만원 정도였다. 거래는 본격화되지 않아 가격이 크게 뛴 것은 아니다.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 김모(46)씨는 “농경지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 투자가치가 있을 것 같다”며 “하지만 정부 정책이 자주 바뀌고 일관성이 없어 아직은 관망 중”이라고 말했다.마을 어귀 슈퍼마켓에 모인 주민들도 농림부의 이번 발표에 관심을 보였다. 이번에 농지를 전부 팔아 도시로 나가겠다는 사람도 있고, 일부를 팔아 빚을 갚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농지가격이 상승할 것에 기대를 갖고 아직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최근 정부가 농경지 이용방안을 확대하고 개발허가도 완화키로 하자 농지에 대한 투기 조짐이 일고 있다. 겨울철 관광지로 유명한 평창과 강릉을 찾은 관광객들도 농지에 관심을 보이며 농촌을 방문하는 숫자가 늘어났다.노원구에 사는 박모(52)씨는 가족과 함께 용평스키장에 왔다가 평창군 진부면 일대의 농지를 들러보았다는 것. 정부의 방침대로 농지규제를 완화한다면 평소 관심을 가졌던 펜션사업을 하기 위해 농지를 구입하겠다는 생각이다.관계공무원에 따르면 전문꾼들은 이미 시·군청에 들러 도시계획과 도로망 공사계획 등을 확인하고 매입순위를 매기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는 후문이다. 강릉시 관계자도 허 장관의 발표 이후 농지에 대한 문의전화가 예전보다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평창군 진부면 K부동산 소장은 “그동안 도시민들의 농지 수요는 전원주택을 짓는 등 단순한 차원이었지만 지금은 투기성이 짙다”며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휴자금이 농지에 몰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5일제와 맞물려 농촌관광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한 도시 투기꾼들의 묻지마 농지매입도 나타날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농촌지역 주민들은 “농지규제 완화가 농촌경제 활성화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농촌사회 붕괴의 역작용도 크다”며 “농민들이 농촌을 지키면서 빚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지적했다. 지자체 농지담당자들도 난개발과 생산기반 붕괴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농림부가 발표한 농지의 30% 개발허용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백종운baek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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