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7일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회장 황창주)는 보라매공원에서 농가부채 관련 전국농업경영인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이날 집회는 중앙언론에 거의 한 줄도 나지 않았다. 농가부채대책을 요구하는 농민단체의 주장에 대해 일반 경제계, 언론계의 대부분은 ‘농업인들이 떼만 쓴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한다. 더욱이 농업관련 기사는 일반언론의 관심 밖이다.

11·17대회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우리의 언론풍토에서 그리 이상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농림부 차원에서 주요 언론사의 농업분야 담당 논설위원들에게 계속 자료를 보내주고는 있지만 농업관련 기사가 중앙일간지에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실정이다.

TV와 라디오의 경우 사정은 조금 나은 편. KBS1TV의 ‘농업도 경영이다’(일요일 06:10∼07:00) 코너가 고정화돼 있고, KBS 제1라디오에서는 매일 아침 5시부터 6시까지 ‘밝아오는 새아침’이 방송된다. 농촌관련 드라마로는 KBS에서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MBC에서 ‘전원일기’가 방영된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은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농업과 농촌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농업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방송시간이 드라마를 빼놓고는 거의 전적으로 농업인들만이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편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언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학계에서도 농업경제학자를 제외하고는 농업과 농촌, 농민을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프랑스에서 농업·농촌에 대한 지원의 논리를 개발할 때 농업경제학자보다 사회학자, 인류학자, 일반경제학자 등 비농업계의 전문가들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과는 크게 다른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이같이 농업·농촌이 여론주도층의 관심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에서 농민단체가 농업계 이해를 대변하고 이를 정책적·제도적으로 반영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은 자명하다. 그리나 농민단체가 주장하는 논리의 설득력이나 방법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농민단체의 한 실무자는 “외부여건은 급속히 바뀌고 있음에도 농민단체들이 그 변화에 맞게 스스로를 적응시키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고 말한다. “농민단체의 주장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어떻게 하면 국민들을 설득하고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까지 세밀하게 검토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소비자단체나 일반 시민단체와의 일상적인 연대활동도 활발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 농민단체들의 정책활동방식은 우리 나라 농민단체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프랑스 농정에는 농민단체가 제시한 아이디어와 정책이 유난히 많다고 한다. 그것은 농민단체가 정책적 요구를 내걸고 도로점거 등 행동에 나서면, 정부는 다른 사회단체·시민단체의 반응을 보고, 지지를 받을 경우 그 정책을 수용하고, 지지를 받지 못할 경우 수용하지 않는 정책결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오현석씨(전 농경연 위촉연구원)의 설명이다.

농업부문 이슈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기는 농림부도 예외는 아니다.농업·농촌기본법이 입법예고 되고,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와 상임위를 통과할 때까지 ‘농업·농촌기본법’이라는 용어가 주요일간지에는 거의 한 번도 등장하지 못한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기본법의 제정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법적 규정을 마련하고, 그 가치의 유지를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농업인의 책무와 정책수단을 명시하기 위한 것. 따라서 법 제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왜 농업과 농촌이 중요하며 농업과 농촌이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국민이 나서 지불해야 하는가’에 대해 국민들의 이해를 구할 논리의 개발과 설득과정이 절대적이다. 그럼에도 농업·농촌기본법은 전혀 여론화되지 못했고,국민들은 농업·농촌기본법이 제정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지나가고 있다.

이 역시 농업분야를 경시하는 우리의 언론풍토에 책임의 일단이 있을 것이다. 농림부 스스로가 국민을 소외시키고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하는데 일반 언론이 알아서 ‘크게’ 다루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를 보자. 96년 자크 시락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 최대 농민단체인 FNESA(농업경영자생띠까전국연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국가가 농업과 농촌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명료한 정의를 내리겠다”고 선언했고, 그것이 기본법 개정의 시발점이었다. 이 소식은 프랑스 주요 언론의 지면을 크게 장식했음은 물론이다.

이후 농업관련 학자뿐만 아니라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로 팀이 구성돼 맨 처음 한 작업이 “농업은 사회에 있어서 무엇인가, 왜 국가가 농업을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리개발이었다. 그 결론은 “농업은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기능을 하므로 그 기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농림부가 법안을 만들고 농업계만의 여론 수렴에 머문 우리와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국민과 함께 하는 농정’을 표방하며 농소정협의회를 구성하고, 농산물 유통에 있어서 농소상정협약을 이끌어내는 등 소비자와 국민을 정책결정과정의 중심축으로 끌어들인 점은 괄목한 만한 발전이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형식적인 농소정이 아니라 과정과 절차에까지 소비자와 국민을 참여시키는 질적 도약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농민단체들도 억지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논리로, 소비자와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농정활동을 전개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농업과 농촌의 문제를 여론화하고 연구하는 여론주도층에 대한적극적인 관리와, 소비자·시민단체와의 연대활동 등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농업·농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폭넓은 농업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권사홍 기자 kwons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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