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상 팩트시트 공개 후폭풍
비관세 장벽 완화 압력 작용 비판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한미 통상협상 내용을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공개되면서 후폭풍이 일고 있다.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 검역 협력을 위한 전담 창구 설치 요구가 비관세 장벽 완화 압력으로 작용해, 결과적으로 수입 확대를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14일 공개된 ‘팩트시트’에 따르면 농업 분야에서 직접적인 추가 개방은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양국이 식품과 농산물 관련 비관세 장벽 논의를 위한 협력과 소통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행 조치의 하나로, 미국 측 요청에 따라 미국산 과일과 채소의 수입 검역 절차를 전담하는 ‘U.S. 데스크’가 신설된다. 정부는 U.S. 데스크 설치가 기존 8단계 검역 협상 절차를 단축하거나 생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U.S. 데스크가 비관세 장벽 완화 압력 요인으로 작용할 경우 사과, 배 등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은 “품목별 시장 개방이나 관세 조치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기술적으로 상호 협력을 위한 U.S. 데스크 설치는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라며 “설치 이후에도 기존과 달라지는 점이 없다면 미국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분간 큰 변화가 없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농축산물 수입 검역 과정에 신경을 더 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며 “미국 농축산물 수입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그는 “검역 부분은 국민의 먹거리 안전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통상 관점으로 접근해선 안 되고, 철저히 과학적인 체계에서 운영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팩트시트에는 농업 생명공학 제품의 규제 승인 절차의 효율화, 미국 신청 건 지연 해소, 특정 명칭을 사용하는 미국산 육류·치즈의 시장접근 유지 등의 내용도 담겼다. LMO 농산물을 비롯해 미국산 축산물 수입 확대를 위한 사전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농업생명공학제품 관련 위해성 심사절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절차를 개선하고, 객관적·과학적으로 심사를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며 “체다치즈, 살라미 등 명칭 사용을 미국 수출자가 한국 시장에서 계속할 수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며, 이는 추가 개방을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팩트시트 내용이 공개되자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농축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에 해당한다는 고강도 비판이 이어졌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은 “쌀·쇠고기 등 민감 품목에 대한 직접적 시장 개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미국 측의 요구가 비관세 장벽 완화라는 형태로 압박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지울 수 없다”며 “LMO 승인 효율화, 검역 전담 창구 설치, 명칭 사용 보장 등은 어느 하나도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요소이며, 향후 이를 빌미로 미국산 LMO 감자·육류·치즈·과일의 시장 접근성 확대가 이뤄진다면 국내 농가의 경쟁 기반을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US 데스크 설치로 미국 측 요구가 정례적으로 제기될 공식적 통로가 마련된 만큼, 잠재적 개방 압박이 구조적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앞으로 세부 조율 과정에서 비관세 장벽의 완화 범위를 철저히 제한하고 국내 농업 보호 기준을 WTO·FTA 규범 내에서 최대한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비관세 장벽 완화 시 국회 보고 의무화 △LMO·검역·명칭 기준 등 국민 먹거리 안전기준 엄격 유지 △LMO 승인절차 효율화 및 US 전담 데스크 운영 시 농업계 참여 보장 등을 요구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 중 농업 분야(상호무역 촉진) 내용 (비공식 국문 번역문, 출처-대통령실)
한국은 식품 및 농산물 교역에 영향을 미치는 비관세 장벽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한다. 이를 위해 양자 간 협정 및 의정서 상의 기존 공약 이행을 보장하고, 농업 생명공학 제품의 규제 승인 절차를 효율화하고 미국 신청 건의 지연을 해소하며, 미국산 원예작물 관련 요청을 전담하는 'U.S. 데스크(Desk)'를 설치하고, 특정 명칭을 사용하는 미국산 육류와 치즈에 대한 시장접근을 유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