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농정전문기자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11일 취임했다. 그는 ‘새로운 대한민국 농협’을 표방하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농협 △농업인과 함께하는 농협 △지역농협을 위한 농협 △글로벌화된 농협을 통한 경쟁력있는 농협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에는 농협의 혁신에 대한 의지가 강하게 묻어난다. “새로운 해답은 언제나 새로운 행동을 요구한다”든지, “파괴적 변화” “환골탈태”등의 워딩이 그것이다.

“농협의 주인은 농업인 조합원”이라며 “조합원이 걱정 없이 농사짓고, 충분한 문화·복지 지원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농협의 본분”이라는 언급도 눈에 띈다. 중앙회의 모든 사업은 농업인 조합원과 농축협의 입장에서 추진하도록 체계를 개편, 조합원의 소득증대와 농업인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농협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조합 직원, 조합장 등을 거치며 평생을 농민과 농촌 현장에서 동고동락해 왔다는 점에서 농협을 혁신하겠다는 그에게 기대가 쏠리고 있다. 강 회장은 선거 때 약속한 100대 공약을 하나하나 꼭 실천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강 회장은 농협의 혁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가 제시한 공약의 중심에는 ‘농축협 중심의 농협운영’과 ‘경제사업 활성화’가 있다.

농축협 중심의 농협운영 방안으로는 △농축협의 중앙회 및 계열사 지분 확대 △지역기반 중앙회 유통계열사 조합으로 이관 △상호금융 독립화 △경제지주 농축협 지도지원부서 중앙회로 이관을 제시했다. 강회장은 경제지주와 관련, 100대 공약의 맨 앞에 “새로운 농협의 100년 미래 농축협 경제사업 활성화와 매출수익 극대화에 사활을 걸겠다“고 약속했다.

교육지원 분야 공약으로는 농축협이 직접 경영하는 중앙회로 조직체계와 사업 방식을 확 바꾸겠다고 했다. 여기에는 △감사위원장, 전무이사 및 사업 대표이사 직선제 △지역 농정활동 대표로 조합장 도지회장제 △중앙회 계열사에 농축협 지분 참여 및 이사회 과반 조합장으로 구성 △ 시군조합장운영협의회 정식 기구화 △농축협과의 경합사업은 농축협으로 이양 또는 공동투자 확대 등이 담겼다.

강 회장이 ‘농축협 중심의 농협 운영’과 ‘경제사업 활성화’를 농협중앙회 혁신의 최우선 방향으로 내세운 것은 농협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동안 농협은 농민의 협동조합으로서 그 본령인 경제사업은 소홀히 하고, 신용사업에 치중하면서 중앙회는 조합 위에, 조합은 농민위에서 제 잇속을 챙긴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농협법 개정으로 2012년 중앙회가 100% 출자하는 방식으로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로 사업구조를 개편한 뒤 농민의 협동조합으로서 정체성은 더욱 훼손됐다는 평가다. 정부와 농협중앙회는 사업구조 개편의 목표가 경제사업 활성화와 이를 통한 농가소득 증대라고 했지만, 그 목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0년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평가’ 보고서를 보면, 정부의 경제사업 평가결과는 100점 만점에 농업경제는 2013년 88점, 축산경제는 83점에서 2018년에는 각각 72점, 66점으로 오히려 계속 떨어졌다. 농업소득은 2013년 1035만원에서 2019년 1026만원으로 감소했다. 사업구조개편에 대한 만족도는 2018년 기준 농민조합원 56.7점, 조합은 51.8점으로 낙제점이었다.

농협 사업구조 개편의 목적은 농민과 조합에 실익을 주는 것이었지만, 이러한 결과는 사업구조 개편으로 농협의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오히려 농협중앙회의 사업이 지주회사, 자회사라는 주식회사 체제로 바뀌면서 조합과의 경합과 갈등은 커지고, 중앙회와 조합, 그리고 농민조합원간의 간격은 더욱 벌어졌다. 협동조합은 회원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주식회사는 이해 충돌 시 자신의 이익을 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 회장의 혁신을 통해 농협중앙회가 과연 농민의 협동조합으로 거듭 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그동안 민선으로 선출된 많은 회장들이 농협중앙회 개혁 또는 혁신을 공약했지만, 모두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왜곡으로 얼룩졌다. 그것은 중앙회장이 되는 순간, 임직원들의 ‘인의 장막’에 포획되고, 농협의 감독권을 가진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 회장이 혁신에 성공하려면 강한 의지가 중요하다는 여론이다. 협동조합 전문가인 A 박사는 “궁극적으로 농민조합원과 조합 중심의 농협이 되려면 연합회 체제를 지향하는 것이 맞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 지주회사 체제에서도 이사회에 대한 조합의 지배, 조합장 도지회장제, 지주회사에 대한 조합 출자 등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연합회적 성격을 강화할 수 있다. 이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농협 체제에 대한 종합적 검토 없이 경제지주만 중앙회로 다시 통합하는 것은 별 실익은 없이 가뜩이나 비대한 중앙회를 더 키우는 것이 될 수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조합과 농민 조합원 중심으로 농협중앙회를 운영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 회장은 농협중앙회장 당선 이후 자신의 친정인 합천 율곡농협 조합장 퇴임식에서 “회장은 농민 대통령이 아닌 농민 운동가”라면서 “변화와 혁신을 통해 어려운 농업·농촌·농민, 지역 농·축협을 위해 중앙회가 확실하게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합을 떠나면서 농민 조합원들에게 큰 절로 인사한 그가 농민운동가로서, 농민 조합원을 위해 농협의 역사를 바꾼 회장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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