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희소한우 명맥 잇는 가축유전자원센터·종축개량협회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지금은 희소한우이지만 토종 한우이자 미래 자원이 될 칡소(왼쪽 등), 백우 등이 20일 찾은 가축유전자원센터 들판에서 뛰놀고 있다. 
지금은 희소한우이지만 토종 한우이자 미래 자원이 될 칡소(왼쪽 등), 백우 등이 20일 찾은 가축유전자원센터 들판에서 뛰놀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관리한 ‘칡소’  
19일 기준 전국 2228두 사육
맛·가공·특성 연구 등 추진 
흑우·백우도 보존 사업 본격화

황우 포함 우리 한우 5개 품종
FAO 가축정보시스템 등록도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란 시구로 익숙한 정지용 시인의 향수. 정지용 시인이 일본 유학 생활 중이던 1923년 고향을 그리며 쓴 시이자 가곡으로도 불리는 등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민족시 향수에 나오는 ‘얼룩백이 황소’가 꿈속에서도 잊힐 뻔했다. 이 얼룩백이 황소는 성질이 온순하며 고기 맛이 뛰어나 임금님 수라상에도 자주 올랐던 ‘칡소’로, 조선시대만 해도 칡소는 현재 일반적인 한우를 가리키는 누런 소(황우)와 함께 한반도 땅을 누비는 대표적인 한우 품종이었다. 하지만 칡소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씨가 마를 정도로 찾아보기 힘든 ‘희소’ 한우가 된 아픈 역사도 있다. 이 칡소를 비롯한 다양한 품종의 한우가 다시 한반도 들판을 누비기 시작했다. 지난 20일 종축개량 전문기관인 한국종축개량협회 관계자들과 칡소를 비롯해 백우, 흑우 등 이제는 희소 한우가 된 국내 한우 품종의 명맥을 이어가는 현장인 경남 함양의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센터를 찾았다.
 

칡소와 백우를 비롯한 우리 고유종 한우.
칡소와 백우를 비롯한 우리 고유종 한우.

“한때는 멸종 위기까지 갔던 칡소가 이제는 산업화를 위한 첫발을 내디딜 정도까지 됐습니다. 이외 백우, 흑우 등의 우리 한우 품종도 보존 사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가축유전자원센터에 따르면 1399년(정종 1년) 발간된 조선시대 수의학서인 신편집성마의방우의방에 황우를 비롯해 칡소, 흑우, 백우, 청우 등 다양한 털색을 지닌 한우가 기재돼 있을 정도로 조선시대 한우 품종은 다양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가 조선우 심사 표준에 황색 소만을 조선의 소로 규정하고 나머지 품종은 수탈·도태한 뒤 황우 이외 한우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제가 자신들의 재래종 소 규격을 키우기 위해 한우를 활용한 것이다. 

한만희 가축유전자원센터장은 “한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황우를 비롯해 백우, 칡소, (내륙)흑우, 제주흑우 등 5개 품종이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주관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DAD-IS) 품종으로 등재돼 있다. 하지만 전체 한우의 0.1%에 그치는 등 황우 이외 다른 품종의 한우는 희소 한우가 됐다”며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 전반기에만 해도 이 품종들이 유지됐지만 일제에 의해 황우 이외 칡소, 백우, 흑우 등은 도태 멸종의 대상으로 삼았고, 이 품종을 일본으로 가져가 자신들의 화우를 만들 때 유전자원으로 썼다”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토종자원이자 미래자원이 될 수 있는 희소 품종에 대한 보존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기 시작하며 국제적으로 등록을 했고 현재 사육도 늘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칡소(앞쪽)와 백우.
칡소(앞쪽)와 백우.

기지개를 켜는 대표적인 희소한우 품종이 칡소다. 3월 19일 종축개량협회 기준 칡소는 전국에 2228두가 길러지고 있고, 가축유전자원센터에서도 희소 한우 중 가장 먼저 산업화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품종으로 칡소를 꼽고 있다.

이날 현장에 동행한 노재광 종축개량협회 차장은 “10여년 전 축산과학원과 협업해 칡소 전수 조사를 했다. 개체 DNA를 채취해 진짜 칡소인지를 파악했고, 확인된 칡소를 데이터베이스화 시켜서 관리하고 있다”며 ”광역도 종축장 등 11개 생산기지에서 칡소를 관리하며 정액이 생산되면 농가에서 수정하고 태어난 소를 종축개량협회가 현장에서 확인, 칡한우(칡소)관리서를 증명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만희 센터장은 “현재 칡소는 산업화를 위한 첫발을 떼고 있다. 농식품부, 종축개량협회와 칡소개량사업을 하고 있고, 산업화가 되려면 맛이나 가공·고기 특성 등이 중요해 이를 위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희소한우 중) 칡소는 가장 먼저 산업화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흑우.
제주흑우.

칡소를 이어 흑우와 백우도 순차적으로 그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백우는 23두, 제주흑우는 546두가 국내에 있다. 이 중 멸종 위기까지 처한 백우의 경우 축산과학원이 2009년 전북 정읍과 대전에서 백우 암소 2마리와 수소 1마리를 수집, 인공수정과 수정란 이식 등 생명공학기술을 활용해 개체 수를 늘리고 있다. 2027년엔 50두까지 늘릴 계획이다. 

“식량 자산·종자주권 대비…유전자원 보존, 우리의 책무”

가축유전자원센터 한만희 센터장(왼쪽에서 네 번째)을 비롯한 센터 연구진들과 한국종축개량협회 경남부산울산지역본부장(가운데)과 노재광 종개협 차장(오른쪽에서 네 번째) 등 관계자들이 희소가축 명맥을 이어나가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가축유전자원센터 한만희 센터장(왼쪽에서 네 번째)을 비롯한 센터 연구진들과 한국종축개량협회 김준수 경남부산울산지역본부장(가운데)과 노재광 차장(오른쪽에서 네 번째) 등 관계자들이 희소가축 명맥을 이어나가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가축유전자원센터와 종축개량협회는 국내 토종 품종이자 유전자원 가치가 있는 희소가축을 보존해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게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책무라고 강조한다.  이외에도 센터에 따르면 가축 유전자원 보존 의미는 △식량 자원 차원에서 신품종 개발 시 육종 및 다양성 확보 소재 △가축질병 등 멸실에 대비한 복원 소재 △가축질병 저항성 품종개발 육종 소재 △의료용 개발 소재 △동물치유·문화 컨텐츠 융복합 소재 등 뚜렷하다.
 

한만희 센터장은 “지금 당장은 생산성이 안 나오거나 경제성이 뒷받침 되지 않아도 흑우나 백우 모두 우리 토종 품종이자 미래 자원으로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할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며 어느 세대에 이들 품종이 경쟁력을 갖추고 산업화될지 모른다. 특히 현재 종자 주권도 야기되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우리 고유 품종을 제대로 보존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경제성이 없어 농가에서 키울 수 없기에 국가 차원에서 미래 자원으로 희소 한우를 키워나갈 방침”이라며 “한우뿐만 아니라 돼지, 가금, 염소, 사슴 등도 우리 종자를 계속해서 보존, 후대에 이어주겠다”고 밝혔다.  

노재광 종축개량협회 차장은 “종축 등록기관이자 개량기관인 종축개량협회는 축과원과 연계해 앞으로도 칡소를 비롯해 우리 고유종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에 집중하겠다. 희소가축은 당장은 큰 성과를 낼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 종자를 이어간다는 당위성과 미래 세대에 물려줘야 할 막중한 책임감이 있기에 정부의 관심도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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