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식품 물가 상승은 어쩌다가 심각해지는 일이 아니다. 상승과 하락이라는 반복적인 패턴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식품 물가 상승 원인, 서민 경제 전반, 고령사회 등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임시방편 일 수밖에 없다.

ㅣ박진희 (재)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

소득양극화는 먹거리 양극화를 불러온다. 소득이 낮으면 경제적 이유로 좋은 먹거리와 멀어진다. 먹거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므로 이런 현실을 바꾸자고 이야기하고 다닌 지 올해로 12년이 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그저 후발주자였을 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먹거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며, 누구나 건강에 이로운 음식을 먹을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연구하고, 활동해 왔다. 그리고 먹거리의 생산, 유통, 가공, 소비에 이르는 모든 단계가 정의롭고 공정해야 한다고도 힘주어 말해왔다.

먹거리 기본권, 먹거리 정의(Food Justice)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집단은 지난 십여 년 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해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났다. 각종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먹거리 정의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고, 먹거리 기본권 보장 조례를 제정하거나 푸드 플랜을 수립한 지자체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관련된 정책이 있는 것과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본격 운영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최근 언론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뉴스 중 하나는 식품 물가이다. ‘사과 하나가 만원이라니!, 장보기가 무섭다, 외식 물가 고공행진, 청년이 굶는다’라는 뉴스가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채소, 과일 등 55개 품목의 신선식품 물가지수는 2024년 2월, 전년 동월 대비 20.2%나 인상되었다. 무서울 정도의 인상률이니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서민에게 장보기는 두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장바구니 물가가 내릴 수 있게 긴급농축산물 가격 안정 자금 투입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반가운 조치이지만 안타깝게도 장바구니 문제는 일시적 정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식품 물가 상승은 어쩌다가 심각해지는 일이 아니다. 상승과 하락이라는 반복적인 패턴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식품 물가 상승 원인, 서민 경제 전반, 고령사회 등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임시방편 일 수밖에 없다. 여러 지자체에 푸드플랜이나 먹거리 기본권 조례에 따른 제도가 있고, 긴급 대책을 지시할 만큼 중앙정부도 먹거리가 중요한 사안이라는 인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먹거리 문제의 대안은 왜 매번 미봉책일까?

우리 사회 소득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와 소득 하위 20%의 소득 격차는 2019년 23.7배, 2020년 25.3배, 2021년 25.7배로 해마다 심화되었다. 식품 물가 상승의 여파는 말할 나위 없이 소득 대비 지출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는 소득 하위 그룹에게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저소득 가정에서 출생하고 자라는 아동은 너무나 당연하게 빈곤 아동에서 빈곤 청소년이 되고, 빈곤 청년으로 자라난다.

중위층 이상이라 하더라도 주거 문제로부터 청년 빈곤이 시작된다. 심각한 고령사회는 빈곤 노인을 양산한다. 직업을 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장애인은 소득 창출의 기회부터 부여되지 않는다. 이처럼 구조적인 소득 하위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게 두려운 건 물가 상승만이 아니다. 기후 위기, 각종 팬데믹은 빈곤을 더욱 강화한다. 강화된 빈곤 앞에 먹는 문제는 눈앞이 깜깜한 일이 된다. 라면 하나를 끓여 국물을 남기고 다음날 밥을 말아 먹는 일이 일상이 될 만큼 말이다.

식품 사막(Food desert)이라는 말이 있다. 식품 사막은 특정 거주지 주민들이 낮은 소득, 고령화로 인해 신선야채 등을 구입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식료품점이 철수하거나 식료품점이 있더라도 가공식품만을 취급하는 경우를 말한다. 미국과 호주 같은 나라는 도시 외곽에 있는 빈곤층 밀집 거주지역이, 일본은 공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고령자 밀집 거주지역이 대표적인 식품 사막 지역으로 분류된다. 신선식품으로부터의 배제와 고립은 질병 발생과 의료시스템에서의 차별과 고립으로 연결되고, 취업의 어려움, 의료비 추가 지출에 따른 경제 상황 악화로 이어진다. 이 고리 안에 있으면 먹거리 빈곤 탈출은 요원한 일이 된다.

얼마 전 모 업체의 당일 배송 지도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일 배송 제외 지역이 소멸 위험 지역과 완벽히 일치했던 것이다. 최근에 농촌 지역은 이미 식품 사막이 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들은 식품 사막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서울과 같은 도시의 식품 사막 사례에 대해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꾸준한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먹거리 양극화와 이에 따른 먹거리 빈곤이 어떻게 심화되었는지, 어떤 문제가 발생되고 있는지 대한민국 식품 사막 지도가 그려져야 할 때이다. 임시방편이 아닌 중앙정부 차원의 실질적 식품 대책과 먹거리 보장정책이 태동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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