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경매장에 수박이 적재돼 있는 지난해 강서농산물도매시장 모습. 
경매장에 수박이 적재돼 있는 지난해 강서농산물도매시장 모습. 

서울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올해부터 내년까지 2개년에 걸쳐 추진되는 ‘파렛트(팰릿) 단위’ 수박 출하·거래 의무화 계획이 일부 변경됐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올해 ‘5톤 이상 출하 차량’ 적용은 예정대로 진행하되 내년 ‘1톤 차량을 제외한 전면 시행’ 계획은 올해 사업 시행 이후 이해관계자와 협의를 거친 뒤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사업 유예’ 여지를 남긴 것이다. 그러나 반대 의견을 피력해 온 시장 내 대다수 종사자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사업 연속성 측면에서 올해 첫발을 떼면 내년 시행도 예정된 수순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공사가 내부 반발이 거세지자 강행 추진을 위한 ‘꼼수’를 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5톤 이상 차량’ 예정대로 진행‘5톤 미만’은 이해관계자 협의 후 결정 방침 밝혀

서울시공사 강서지사는 3월 12일 자로 ‘수박 팰릿 출하 및 거래 조치명령(변경) 통보’를 시장 내 도매시장법인 3곳(농협공판장 포함), 시장도매인 60개사에 전달·시행했다.

주요 내용은 올해 1월 1일부터 5톤 이상 차량에 대해 파렛트 출하 및 거래를 의무화하는 방침은 시행하는 한편 앞서 지난해 12월 말 조치 명령을 내린 “2025년 1월 1일부터 1톤 차량 제외 모든 차량 팰릿 출하 및 거래 의무 시행” 내용을 “삭제”한다는 것이다. 대신 “5톤 미만은 2024년 5톤 이상 차량 팰릿 출하 시행 후 이해관계자 별도 협의 시행 결정”이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관련법에 따라 단계별 행정처분(1차 경고, 2차 업무정지 10일, 3차 업무정지 1개월) 조치를 시행한다는 점도 명시했다.

표면상으로는 ‘2025년 1톤 제외 모든 차량 의무 적용’이라는 기존 방침에서 한발 물러난 것으로 비치는데, ‘내년 사업 시행’ 여부에 대한 공사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공사 담당자는 “내년 전면 시행에 대한 우려가 많아 올해 사업 시행 결과와 분석 등을 바탕으로 유통인들과 같이 판단하자는 취지에서 조치 명령 내용을 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사업 시행을 유보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 단계에서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애매하다. 올해 상황을 보고 그때 가서 판단하겠다는 의미다. 고(진행)할 수도 있고, 홀드(유예)할 수도 있다”라면서 “시장 유통인들이 파렛트 의무화 추진 시행으로 물량 감소와 매출액 감소 등을 우려하고 있는데, 실제 그렇게 결과가 나오는지를 지켜본 뒤 내년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서시장은 전국 농산물도매시장 중 가락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수박 거래물량이 많은 곳이다. 2022년 기준 3만2472톤으로, 도매법인 3곳이 30%(9944톤)·시장도매인이 70%(2만2528톤)를 각각 취급하고 있다. 가락시장과 구리시장이 수박 파렛트 거래를 의무화한 가운데 수도권(서울권)에서는 강서시장이 ‘파렛트 단위 출하’와 ‘산물(벌크) 출하’를 병행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파렛트 단위로만 거래하도록 하는 의무화 방침이 추진 중이다. 4월부터 수박 출하가 시작될 예정이어서 최대 현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예정된 수순대로 진행 우려에 시장 종사자 불안 여전“의무화 즉각 중단” 촉구

지난해부터 반대(중단) 입장을 제기하고 있는 시장 종사자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도매시장법인, 시장도매인, 중도매인 등 시장 유통주체 대부분이 파렛트 거래 의무화 추진으로 출하 여건이 되지 않는 중소 농가들이 도매시장 출하를 포기하게 만들어 반입량이 줄어들고 이로 인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 등을 수차례 공사에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공사 계획대로 강행 수순을 밟고 있다는 인식이 크다. 올해 사업 결과를 지켜본 뒤 내년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부분 역시 요식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판단의 배경 중 하나는 올해 파렛트 반입 의무화 적용 대상인 ‘5톤 이상 출하 차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에 있다. 화물차에 표기된 ‘5톤’ 차량뿐만 아니라 화물차에 물건을 많이 싣기 위해 개량한 ‘초장축’ 차량도 해당돼 사실상 올해 적용되는 파렛트 의무화 비중이 50% 가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사 관계자는 “5톤 이상 차량 기준은 ‘적재함 길이가 6.2M 이상, 팰릿 10개 이상 적재 가능 차량’으로 규정했다. ‘5톤’ 표기 기준이 아니라 실제 물량을 적재하는 차량 적재함 길이를 기준으로 설정한 것이며, 적재함 길이에 따라 ‘4.5톤 초장축 차량’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적용되는 파렛트 의무화 대상인 ‘5톤 이상’과 ‘초장축’ 차량은 강서시장 수박 출하 차량(3686대) 중 48.3% 비중(5톤 414대·11.2%, 초장축 1369대·37.1%)을 차지한다. 수박 출하 지역 중 남부지방(충청 42%, 전라 20%, 경상 32%) 비중이 94%으로, ‘장거리’ 물류 효율 차원에서 5톤·초장축 차량 비중이 상당하다. 

이런 점에서 시장 유통인들은 공사가 올해 출하 차량의 절반 가까이 의무화 추진을 시행한 상황에서 사업 자체를 뒤로 후퇴(보류 또는 철회)시키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점 등 사업 연속성 측면에서 사실상 '강행' 수순을 밟고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유통인들은 사업 추진 반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으며, 최근에는 반대 입장을 내지 않았던 시장 내 하역회사도 의무화 추진의 즉각 중단을 요청하고 있어 대부분의 시장 종사자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강서시장 도매시장법인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도매법인, 중도매인, 시장도매인, 물류 등 시장 내 모든 유통 주체가 반대하고 있는데도 공사만 ‘나홀로’식의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행태를 보면 올해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얘기는 현재 국면에서 ‘유예’ 여지를 남겨 반대 여론을 ‘갈라치기’하려는 꼼수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결국 공사 계획대로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라고 봤다.

시장의 다른 관계자 역시 “올해 시행되는 5톤 이상 차량 적용 역시 절반 가까이 차지할 정도로 상당한 비중이다. 파렛트 의무 시행으로 반입량 감소 우려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협의 후 결정’이라는 방침으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것 같다”면서 “파렛트 의무화 추진 방침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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