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양계 계열화로 획일화…원재료 ‘동일’
농가 특색있는 스토리·품종 경쟁 없어 
다양성의 시장 창출 고민해 봐야

K-드라마나 K-팝과 더불어 한국의 치맥 문화가 동남아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여름철 한국을 여행하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치맥 인증샷은 빠질 수 없는 단골 코스가 되었다. 한국의 치맥이 유명해 진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한국이 치킨 강국이 된 것은 되짚어 볼 부분이 있다. 

외국은 부분육 중심으로 소비하는데 비해 한국은 삼계탕이나 치킨 등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데 친숙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육계의 평균 출하 체중은 1.5㎏이다. 중국(2.6㎏), 미국(2.4㎏), 브라질(2.2㎏) 보다 훨씬 작다. 사육기간도 짧아서 평균 32일을 사육한다. 중국(55일), 미국(46일), 브라질(45일)보다 상당히 짧은 편이다. 1.5㎏ 생닭을 육가공 하면 1㎏ 쯤 되는 10호 닭이 된다. 10호 닭 중심의 출하구조가 만들어진 이유는 치킨 만드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닭은 계열화가 가장 발달한 축종이다. 패커라고 불리는 회사가 양계농가에게 생산에 필요한 병아리, 사료, 동물의약품, 소모품 등 모든 것을 공급하고, 양계농가가 생산한 닭을 전량 사간다. 일종의 위탁생산이다. 자금이 필요한 농가에게는 대출도 해준다. 농가는 생산매뉴얼 대로,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생산에만 신경 쓰면 된다. 무엇보다 판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양계업의 수직계열화는 1990년 우루과이라운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의 지원과 독려로 추진됐다. 제각각이던 양계농가를 하나로 모아서 규모화와 표준화를 통해 국내 축산업의 경쟁력 향상이 목적이었다. 양계업의 수직 계열화 과정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은 하림이다. 하림은 국내 대표적 식품기업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미국 서부에 곡물 엘리베이터와 사료 운반을 위한 해운사까지 인수할 정도 수직 계열화에 성공했다. 

양계업의 계열화는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진다. 생산농가는 패커에 종속돼 교섭력이 낮아지고 패커가 정한 이윤만 가져갈 수 있다. 무엇보다 생산품의 품질과 스토리에서 차별화할 요인이 줄어든다. 생산 매뉴얼이 정해준 대로 최소비용으로 생산하고 원가경쟁에만 집중해야 한다. 국가적으로는 양계업이 획일화 되고, 전국의 모든 치킨 프랜차이즈에게 거의 똑같은 원재료가 공급된다. 원재료가 같으니 조리방법과 부재료에서 차별화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다양한 브랜드의 치킨이 발전했다. 만약 양계농가가 획일화 되지 않고 다양한 스토리와 품종으로 경쟁할 수 있었다면 한국의 양계업과 치킨은 다른 경로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가장 대비되는 나라는 프랑스다. 닭은 프랑스의 상징물이며 국조(國鳥)이기도 하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 초대 국왕인 앙리 4세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짐은 왕국의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일요일이면 닭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맹세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앙리 4세의 선언은 루이 13세의 치세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현실이 됐고 앙리 4세는 국민들에게 대왕의 칭호를 받았다. 21세기에도 일주일에 한 번도 고기를 못 먹는 국민들이 있는 나라가 많은데 프랑스는 이미 16세기에 이걸 이뤄낸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국가가 관리하는 닭의 품종만 30개가 넘는다. 품종이 다양화 됐다는 것이다. 어떤 품종은 속성으로 키워서 싸게 공급하지만 어떤 품종은 2년을 키워서 최고급 식재료로 사용한다. 프랑스 양계농가는 다양한 품종과 세분화된 시장 덕택에 원가경쟁만 하지 않아도 된다. 농가마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스토리로 경쟁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사육방식으로 닭을 키우고 가격도 제각각이다. 누구는 대량생산된 닭을 저렴한 치킨으로 먹지만 누구는 일생일대의 프러포즈를 닭요리와 함께 한다. 

양계업의 발전과정에서 한국의 획일성과 프랑스의 다양성은 각 나라의 발전경로와 선택의 차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양계업과 치킨이 가진 획일성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획일성의 반대편에서 다양성의 시장도 만들어 낼 여지는 없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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