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자기 나라의 농업과 먹거리는 그 나라 사람들이 결정해서 농업과 먹거리의 지속가능성과 지역내 선순환을 구축해야 한다는 식량주권을 말로만 내세우는 한국 농정당국의 인식에 대한 한국 농민들의 분노는 유럽 농민이 봉기하게 된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ㅣ윤병선 건국대 교수

‘금사과’, ‘금배’ 이야기가 연일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사과 하나가 만원이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댄다. 그런데, 밥 한 공기에 세상이 담겨있다는 이야기처럼, 사과뿐만 아니라 모든 먹거리에는 세상이 담겨있다. 냉해와 폭우, 화상병 등으로 사과 농사가 어려워져서 공급이 부족했고, 이로 인해 사과가격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계산된 통계를 인용해서 우리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과를 먹어야 하냐는 볼멘 투정까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무 하나에 달리는 개수보다는 대과를 수확하는 것이 과수농사를 잘 짓는 것으로 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적과와 봉지작업 등 많은 품이 들어간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큼지막한 사과값은 중량에 비례해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올해 햇과일이 출하되기 시작하면 과일가격도 예년의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요즘의 상황을 보면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원래 이즈음에 내리는 비는 봄을 재촉하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지난겨울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따뜻한 날씨에 비도 잦았기에 벌써부터 올해 농사도 만만치 않을까 염려된다. 궂은 날씨에 비닐하우스의 벌조차 움직일 생각을 안 해서 하우스 농가의 걱정도 걱정이고, 계속된 비로 이른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논밭은 로터리 작업도 여의찮다고 한다. 어쩌다 한 번씩 몰아닥치는 짧은 한파가 작물을 크게 상하게나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해거리 정도로 이런 상황을 치부할 수 있으면 참 다행이겠지만, 기후위기 또는 기후재난의 시대에 이미 접어들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에게는 상대성 이론으로 잘 알려진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엔트로피 법칙이야말로 모든 과학에서 제1의 법칙”이라는 말을 했는데, 엔트로피 법칙이란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사용가능한 것에서 사용불가능한 것으로, 질서 있는 것에서 무질서한 것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에너지의 소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쓸모없게 된 에너지의 양이 증가하게 되고, 그것이 지구온난화로 연결되어 위기로 치닫고 있다. 화석연료의 소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의 사용을 늘리자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배경에서 유럽연합은 환경과 관련한 선진지역답게 ‘유럽 그린딜’을 통해서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이른바 ‘탄소중립’ 목표를 진작에 발표했다. 그리고, 농업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았다. 농가가 직접지불금을 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이 추가되었다. 농약 사용과 위험도를 50% 감축하고, 비료 사용량은 최소 20%, 토양의 영양 손실률, 축산물과 양식수산물 관련 항생제 판매량도 최소 절반 이하로 줄이고 휴경지 4% 의무화 등이 주요 골자이다. 이러한 엄격한 조건을 준수해야 공동농업정책의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유럽 여러 나라에서 농민들이 봉기했다(본보 2월 23일자, 이상길의 시선). 각 나라의 농업이 놓인 상황에 차이가 있기에 일괄해서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봉기에 참여한 주체들의 성격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 배경을 특정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최소한 현재의 농업상황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누구보다도 최전선에서 실감하고 있는 농민들이기에 기후위기에 대응한 농업 전반의 전환 필요성을 부정할 농민은 없다. 냉해로부터 포도밭을 지키기 위해서 모닥불을 피우고, 봉화를 매달던 농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의 농가경제가 위기에 봉착하게 되니 농민들로서는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농자재비 상승과 농산물 수입으로 인한 가격폭락 상황에서 당장의 농가경제의 보호가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유기농으로의 전환만 하더라도 현재의 유기농은 농자재비 잡아먹는 유기농이고, 그 유기농산물의 판로도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다. 그러면서 EU가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의 자유무역 협정을 추진하는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의 농업과 먹거리는 그 나라 사람들이 결정해서 농업과 먹거리의 지속가능성과 지역내 선순환을 구축해야 한다는 식량주권을 말로만 내세우는 한국 농정당국의 인식에 대한 한국 농민들의 분노는 유럽 농민이 봉기하게 된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CPTPP 가입과 남미공동시장과의 FTA추진 등이 한국식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나오지나 않을지 벌써부터 농촌 현장은 우려하고 있다. 자연은 너그럽지 않다(天地不仁)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정책이 필요하고, 정책은 자연이 너그럽게 되도록 하는 대응책이어야 하고, 자연으로 인해서 너그럽지 않게 된 세상을 너그럽게 만드는 적응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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