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 소비 심리 꽁꽁
수입산 가세로 물량만 넘쳐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국내산 돼지고기 소비가 살아나야 할 삼겹살데이를 나흘 앞둔 2월 28일 한 대형마트 축산물 매대에선 저가의 수입산 돼지고기가 메인을 차지하고 있었다. 
국내산 돼지고기 소비가 살아나야 할 삼겹살데이를 나흘 앞둔 2월 28일 한 대형마트 축산물 매대에선 저가의 수입산 돼지고기가 메인을 차지하고 있었다. 

2월 28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마트 축산물 매대. 양돈 농가 소득 증진과 국내산 돼지고기 소비 촉진을 위해 2003년부터 시작된 삼겹살데이를 나흘 앞둔 시점인지라 삼겹살데이를 알리는 포스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 포스터의 메인을 장식한 건 수입산 돼지고기였다. 국내산 삼겹살의 절반 정도 가격에 캐나다·미국산 삼겹살과 목살이 판매된다는 알림이 메인 페이지에 장식됐고 그 밑에 한돈 위크(week)가 자그맣게 할당됐다. 

캐나다산 국기와 함께 진열돼 있는 캐나다산 돼지고기.
캐나다산 국기와 함께 진열돼 있는 캐나다산 돼지고기.

같은 날 2시간 후 찾은 서울 송파구의 모 대형마트 축산물 매대에서도 단풍잎 무늬 국기까지 박혀 홍보하고 있는 캐나다산 삼겹살·목살이 매대 중심을 점유하고 있는 게 목격됐다.

올해 삼겹살데이는 겨울 내내 이어진 저돈가 침체기를 벗어나야 하는 중요한 시기지만 주요 소비처인 대형마트에서 수입산이 그 길목을 차지하며 돈가 반등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수입산 역시 소비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 신선식품 특성상 소비를 늦출 수 없어 나타난 고육지책으로 분석된다. 

깊은 소비 침체 속에 이번 겨울 초입부터 양돈 농가들은 최악의 한파를 맞고 있다. 한국은행이 2월 25일 발표한 ‘경제전망 핵심 이슈 보고서’를 보면 소비 핵심 계층인 30·40대 소비가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 주 소비층이 지갑을 닫으며 식당과 가정 양쪽에서 돼지고기 소비가 얼어붙었고 이는 돈가에 직격탄이 됐다. 

한덕래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국장은 “최근 수입 물량이 많이 들어왔는데 워낙 국내산이나 수입산 모두 소비가 안 되다 보니 빨리 팔아야 하는 신선식품 특성상 수입산 돼지고기를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삼겹살데이 행사에 맞춰 저가에 판매하고 있는 것 같다”며 “지금은 삼겹살데이와 급식 수요 등으로 돼지고기가 부족해야 할 시점인데 경기 침체에다 총선을 앞두고 행사 등이 잘 열리지 않아서 그런지 소비 자체가 없고 돼지고기는 넘쳐난다”고 전했다. 

 

이번 겨울 돈가 kg당 4526원농가 출하 마리당 9만원 적자

양돈 현장에선 겨울 내내 이어진 저돈가로 인해 출하할수록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사진은 최근의 한 양돈장 내부 모습.
양돈 현장에선 겨울 내내 이어진 저돈가로 인해 출하할수록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사진은 최근의 한 양돈장 내부 모습.

이는 고스란히 돼지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번 겨울(2023년 12월~2024년 2월 27일) 돈가는 kg에 4526원으로 지난 겨울(2022년 12월~2023년 2월) 4820원, 지지난 겨울(2021년 12월~2022년 2월) 4590원을 밑돌고 있다. 설날이 들어 있는 2월에도 4281원이었으며, 삼겹살데이와 개학에 따른 학교급식 재개 등으로 수요가 일어야 할 2월 넷째 주(19~23일)에도 4269원을 기록하며 시세 회복은 요원한 상황이다. 

현장에선 출하할 때마다 마리당 9만원가량의 적자를 감내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출하체중 116kg, 사료가격 737원(kg) 등을 기준으로 대한한돈협회가 분석한 생산비가 kg당 5119원으로 여기서 2월 돈가 4281원을 빼면 kg당 838원의 적자를 보인다. 여기에 평균 출하체중 116kg을 곱하면 마리당 출하 시 9만원 이상의 손해가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돈협회, 경영안정대책 건의했지만 정부는 40여일 지나도록 응답 없어

하지만 정부 대책은 허송세월이다. 사료구매자금(융자 100%·금리 1.8%, 2년 거치 일시 상환) 지원도 이제 수요 조사에 들어가 4월은 돼야 집행이 될 것으로 보이고, 한돈협회가 지난달 1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정식 건의한 돼지 수매사업 추진 등 긴급 한돈경영안정대책도 40여일이 지난 2월말 현재까지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경남 하동에서 2000두 규모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는 문석주 대한한돈협회 부회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 매달 5000만원의 사료비를 내던 게 7000만원까지 올라갔고 지금은 조금 떨어졌어도 한 달에 6400~6500만원이 나온다. 생산비가 엄청나게 올라간 상황에 돈가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출하할수록 손해가 누적되고 있고 결국 대출까지 받게 됐다”며 “지금쯤이면 급식 수요 등으로 육가공업체에서 돼지를 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와야 하는데 전혀 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 대책은 무엇보다 신속함이 우선돼야 하는데 사료구매자금도 이제야 수요 조사에 들어가 4월은 돼야 집행이 이뤄질 것 같고 한돈 농가들은 하루하루 저돈가에 힘겨운 상황을 이어가며 한시가 급한데 저돈가 대책도 나오지 않은 채 시간만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돈가와 관련 이연섭 농식품부 축산경영과장은 “한돈협회에서 요청한 대책 중 회의를 통해 할 수 있는 것과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을 논의했다. 이 중 수매는 국가 재난 상황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민간비축 건을 검토했고 정부에서 보관비용을 지원해 독려할 계획을 갖고 있다”며 “이외에도 설 연휴를 전후로 시작된 할인행사를 이어가고 있고, 봄철부터는 가격이 상승하리라는 관측도 있다”고 밝혔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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