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통계청이 공표하는 통계 중 ‘농가교역조건지수’라는 것이 있다. 1년에 1번, 매년 1월에 발표되는데, 농가 살림살이를 수치화한 것이다. ‘농가판매가격지수’를 ‘농가구입가격지수’로 나눈 뒤 100을 곱한 값으로, 주기적으로 5년마다 바뀌는 기준연도에 따라 상대적인 비교치를 가늠할 수 있다. 즉, 농산물 판매가격이 농자재 구입비용보다 높으면 100 이상으로 농가 살림살이가 괜찮은 것으로 볼 수 있고, 100 아래면 그 반대다. 2023년도 농가교역지수(2020=100)는 90.2다. 앞선 2022년 89.6과 비슷한 수준이다. 기준연도 2020년을 전후해 2017~2019년, 2021~2023년 등 7개년 중 2022년에 이어 2023년 지수가 가장 낮다.

주목할 부분은 농가구입가격지수 항목 중 ‘노무비’인데, 2020년을 100으로 볼 때 2022년 133.1, 2023년 127.3으로 나타난다. 수치상으론 불과 2~3년 사이에 인건비가 많이 증가했다. 이전보다 훨씬 급격하게 산지의 인력 수급 여건이 악화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최대 공영농산물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서 개장일(경매일)수를 감축하겠다는 ‘주5일제’ 추진은 ‘울고 싶은 농민들의 뺨을 때리는 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때 농산물을 수확하기 힘들어 재배규모를 줄이거나 농산물 가격이 잘 나오지 않으면 인건비 부담을 못이겨 수확을 포기하고 농산물을 포전에 버려두는 일이 심심찮게 생기는 실정이다. 고령화와 인력난 심화로 산지 여건은 제때 수확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곳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어려움은 농업을 ‘선택’한 농민들이 짊어져야 할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으면서, 도매시장 내 인력 유입이 힘든 근무여건 개선을 위해 휴업일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해 우려되는 출하 피해까지 도매시장을 ‘선택’한 농민들에게 감당하라고 하는 것은, 도매시장 안 취약 여건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도매시장 밖 농민들에게 또 다른 부담을 돌리는 ‘(도매시장 위주의) 집단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다.

도매시장 여건과 산지 여건 중 어느 쪽이 더 심각한가를 가려보자는 얘기가 아니다.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 같은 선후 문제를 논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적어도 산지 여건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인식이 있는지부터 묻고 싶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주5일제’ 시범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출하자들로부터 충분한 양해와 홍보, 제도 보완, 피해 대책 마련 등을 진행한 이후 시행했다면 ‘상생’을 기치로 한 ‘주5일제’의 정책 가치를 더욱 빛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목적이 아무리 좋더라도 수단이 적합하지 않거나 다른 쪽의 피해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면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최근 가락시장 주5일제 시범사업 중 4월 추진을 보류한 것은 늦게나마 다행한 소식이다.

고성진 유통식품부 유통팀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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