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관태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면서 어업 분야에서도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반드시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수산업계에서는 여전히 추가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법 시행 취지와 중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주로 해상에서 이뤄지는 작업 특성상 충분한 준비 기간 없이는 현장 혼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다만 어업 분야 재해율이 타 산업에 비해 높고, 법이 시행에 들어간 만큼 중대재해 관련 교육을 확대하고 안전·보건 관리 체계 구축을 위한 컨설팅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올해부터 5000여곳 추가 적용어업 분야 재해율 타 산업보다 높아

올해부터 중대재처벌법이 확대 시행되면서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연근해어업 사업장에서도 중대재해 예방 및 재발방지 대책 등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이를 위반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어업 분야에서 올해부터 추가로 법 적용을 받는 사업장은 연근해어업 등 5000여 곳으로 추산된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현황’에 따르면 어업 분야 요양재해율(요양재해자수를 근로자 수로 나눈 백분율)은 2021년 기준 1.49%로, 전체 산업 평균인 0.63%보다 2배 이상 높다. 어업 분야 임금근로자 수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대표성을 띠는 지표로 쓰이지 않지만 어업 분야 재해율이 타 산업 분야에 비해 높다는 것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희용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선내 안전사고 발생 건수는 2018년부터 2023년 9월까지 총 1006건이 발생했으며, 이에 따른 사망 또는 실종자 숫자는 364명으로 집계됐다. 

어업 작업 중에는 끼임이나 충돌, 추락 등의 사고가 주로 발생하는데, 사망 또는 실종 사고 발생 원인별로는 실족 등 해상추락이 76명(21%)으로 가장 많았고, 어구·로프 등의 신체가격 48명, 어구·줄에 감겨 해상추락 45명, 목격자 없이 사망·실종 43명, 양망기 사고 41명, 나홀로 조업 중 사망·실종 40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수협 ‘표준매뉴얼’ 마련선주 안전·보건 관리 체계 지원 조직 신설 검토

해수부는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연근해어업 사업장에 중대재해 대응 체계 구축을 위한 업종별 안전·보건 표준 매뉴얼 제작·보급 및 사업장별 컨설팅 지원 등을 실시해 왔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수협중앙회는 지난해 각 업종별로 위험성을 평가해 조업 과정별 위험요인을 파악하고, 38개 업종을 30개로 분류해 중대재해 대응 지침서인 ‘안전·보건 표준매뉴얼’을 마련한 상태다. 

수협중앙회 선원지원부 관계자는 “같은 사업장이라도 위험성은 조금 틀릴 수 있지만 만들어진 표준매뉴얼에 나온 사항만 지켜도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이행 사항을 충족할 것으로 본다”면서 “선주들에 대한 안전·보건 관리 체계 지원 업무를 총괄해 담당할 전담 조직 신설도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표준매뉴얼이 중대재해처벌법의 면책 조건이 아니라 실질적인 안전사고 예방으로 이어지려면 수산 분야 안전·보건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더 큰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해상 작업 특수성 고려 않는 ‘육상사업장 기준’업계, 2년 유예 등 촉구

그러나 수산업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해 달라는 목소리가 여전히 강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해상에서 주로 작업하는 어업 분야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육상사업장의 기준을 적용받고 있어 법과 현장 괴리감이 크다는 이유이다. 

특히 고령의 어업인들로서는 법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업종별 안전·보건 표준매뉴얼을 보면 정기적으로 안전보건 활동 추진계획서를 작성하고, 위험성평가와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등 매뉴얼에 따라 지키고 실행해야할 항목이 수십가지에 이른다.   

이에 어업인들이 국회 등에 제출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건의문에는 △안전한 작업 환경을 보다 철저히 구축해 실질적 중대재해 예방에 나설 수 있도록 법 적용을 2년간 유예해 줄 것 △법에서 정한 의무사항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해 줄 것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 요청 △어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적용 가능하도록 안전장비 및 안전조치를 현실에 맞게 완화해 줄 것 △중대재해 처벌 수위를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해 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재해빈도 감소 공감대 확산해야중대재해 교육·컨설팅 강화 필요

이처럼 어업 분야는 해상에서 작업하는 특수성이 있지만 안전사고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에서 예방을 통해 재해빈도를 낮추는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업종별 안전·보건 표준매뉴얼 작업에 참여한 이유원 부경대학교 교수는 “어려운 여건은 맞지만 안전 관리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야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작업 환경에 맞는 안전 조치들을 취해 나가야 한다”며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교육을 강화하고, 어민들이 현장에서 궁금한 사항을 바로 물어 보고 사업장 환경에 맞는 안전 관리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상시 컨설팅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업종별로 특화된 조업안전장비의 개발·보급도 시급한 과제로 지적된다. 제주연구원이 지난해 수행한 ‘제주 어선원 조업환경 실태와 개선방안을 위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선주 50명 중 업종 특화 조업안전방비 개발·보급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45명(필요함 23명, 매우 필요함 22명)으로 90.0%를 차지했으며, 선원 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46명(필요함 19명, 매우 필요함 27명), 92.0%의 응답률을 보였다. 

제주연구원은 연구보고서에서 “제주 어선에서 매년 실종·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며, 사망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에 해당되기 때문에 연근해어업 중대재해 예방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어선원들의 안전한 조업 및 인명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안전장비 개발·보급 및 착용의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관태 기자 kimkt@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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