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돌봄교실을 필요로 하는 대상은 영양가 높고, 질 좋은 음식을 제공 받아야하는 대상이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이것은 먹거리를 정의롭게 하는 일이다. 

ㅣ박진희 (재)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

어릴 적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왜 그렇게 배가 고픈지, 가방은 던져두고, 먹을 게 있나 없나 찾는 일이 숙제하는 일보다 늘 먼저였다. 겨울이면 따뜻한 아랫목에 밥그릇이 놓여 있기도 했고,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귤이 있기도 했다. 어떤 날은 과자가 마루 한 켠에 곱게 놓여있기도 했다. 형제자매가 많은 집이라 누가 더 많이 먹나 다투지 않도록 엄마가 한사람씩 봉지를 만들어두던 일도 많아서 간식 봉지가 방안에 곱게 누워 있으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먹거리는 누군가 나를 생각하지 않으면 준비해 줄 수 없는 것이다.

1960년대 미국에는 흑표당이라는 정당이 있었다. 흑표당은 인권단체이기도 하지만 무장세력으로 불리기도 하는 과격했던 단체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단체가 한 일 중에 어린이들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무료급식 프로그램은 흑표당을 알리고 정당 가입자가 늘어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흑표당이 급진적이었고, 무장한 정당이라, 이 정당에 대한 평가는 여러 관점에서 다뤄지겠지만, 흑표당이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아침밥 무료급식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60년대, 미국의 흑인 아동의 먹고 사는 일은 막막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을 터이니 말이다. 먹

는 일, 그것도 아이들을 먹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전 세계 모든 사람의 관심거리이다. 사람을 돌보는 일의 시작은 먹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놀아주는 일도, 가르치는 일도 먹는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진전되지 않는다. 어릴 적, 부모나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과 돌봄을 받은 기억이 있다면 그중의 절반 이상은 먹는 것과 연관이 있을 터이다. 엄마가 아랫목 이불 속에 넣어주었던 따뜻한 밥 한공기가 지금껏 나의 사는 힘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대한민국의 핫이슈 중 하나는 인구 절벽이다. 내가 사는 농촌은 인구소멸 위험 앞에 높여있다는 이야기를 늘 하고 있다. 그러나 인구소멸은 농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도시와 농촌 관계없이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고, 학령기 아동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이는 도시와 농촌에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도시도 농촌도, 신입생이 없어서 걱정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심지어 문을 닫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출산율이 좀처럼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정부 주도의 돌봄사업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돌봄교실, 늘봄교실, 학교밖늘봄교실, 다함께돌봄 등 이 모든 프로그램은 정부가 책임지고 아동을 잘 돌볼테니 부모들은 걱정하지 말고 일을 하고, 걱정하지 말고 자녀를 낳으라는 강력한 메시지다. 아침 7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리고 주말에도 돌봄이 가능한 프로그램이 곳곳에서 가동된다 하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 걱정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교권과 관련된 문제, 운영방식과 관련된 문제는 내가 나설 문제가 아니니 이는 차치하고, 내 걱정은 ‘끼니’이다. 이 수많은 돌봄프로그램은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의 먹는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을까?

늘봄교실에서 밥을 준단다. 저녁도 주고, 간식도 준단다. 정부에서 내는 보도자료만 보면 돌봄 교실에서 아이들을 잘 먹일 것 같지만 그런데 모든 돌봄 사업이 식사와 간식이 공급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돌봄 사업인지에 따라 식사와 간식의 수준이 다르고, 식사와 간식이 공급되는지도 다르다.

다함께돌봄은 예산상 간식비를 수립할 수 없다. 다함께돌봄교실에 와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시간도 보내는데 간식 공급이 없다니! 센터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부모들도 당황한다. 요리 프로그램을 할 수 있으면 프로그램을 하면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학교밖늘봄교실은 전체금액의 5% 정도 수준에서 간식비 수립이 가능하다. 이 정도면 음료수 한 병 사서 한 컵씩 따라 먹일 수 있는 정도의 간식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식사와 간식 제공이 가능한 늘봄교실은 그러나 학교급식법 적용이 되지 않아 학교 급식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학교가 적절한 관련 업체를 찾고, 별도 계약을 체결해 식간식을 발주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도시락이나 간편식을 구입해 제공할 수밖에 없고, 적절한 영양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신경 쓸 상황도 되지 않는다.

돌봄교실을 필요로 하는 대상은 영양가 높고, 질 좋은 음식을 제공 받아야하는 대상이다. 돌봄은 프로그램과 공간 공급 사업이 아닌 가정내 돌봄을 대신하여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일이다. 정부의 모든 돌봄 사업은 대상자들의 건강과 성장을 위해 어떤 먹거리를 어떻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계획하고, 이에 맞는 예산을 수립하며,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담당자를 배치하는 일이어야 한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이것은 먹거리를 정의롭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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