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주량

[한국농어민신문] 

예산 20.2% 삭감에 농업 연구현장 ‘당혹’
연구자 생태계 무너지면 회복 어려워
현장으로 연구자들 향할 수 있게 개선을

우여곡절 끝에 2024년 농업R&D 예산이 지난해보다 20.2%, 금액으로는 2,717억 원 줄어든 1조 739억 원으로 확정되었다. 농업R&D 예산 감소율 20.2%는 국가 전체 R&D 예산 감소율 14.7%를 크게 웃도는 수치이다. 특히 농업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이나 기업을 위한 출연금 연구 예산은 30% 넘게 감액되었다. 농업 연구현장에서는 당혹한 기색이 역력하다. 연구비 삭감은 인건비 부족으로 이어져 당장 이번 봄학기부터 대학원생과 현장연구 인력의 이탈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R&D 사업내용을 재조정해야 하는 혼란은 현실이 되었다.

농업R&D 예산 편성을 결정하는 예산부처·과기부처·국회에서 농업R&D를 바라보는 시선은 저효율·저성과의 반복으로 요약된다. 일부는 농업R&D에 대한 이해부족이기도 하지만, 일부는 그동안 농업R&D의 구조적, 만성적 약점을 외면해 온 업보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의 농업R&D 여건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필요한 혁신을 오랫동안 미루어 온 전환지체 상황이다. 오래 전부터 농업R&D 추진체계의 일원화, 관주도 연구축소와 민간 활성화, 비농업부처와의 융합 강화, 농업 현장연구 강화 등의 대안이 제시되어 왔지만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2024년 농업R&D 예산의 축소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부분은 농업 현장연구이다. 농업R&D 감액 기조 속에서도 스마트농업, 그린바이오, 푸드테크 등 농업과 산업의 경계에 있는 첨단 미래농업 예산은 전년보다 확대 되었고, 그만큼 농업 고유의 현장연구를 위한 예산은 훨씬 더 큰 폭으로 감액되었기 때문이다. 

농업연구는 현장(Field)연구와 실험실(Lab)연구의 합이다. 실험실에서 아무리 그럴싸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현장에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현장은 실험실과는 차원이 다른 변수들이 넘쳐나는 열린 공간이며, 기술적 성공이 확인 되더라도 경제성 장벽이라는 더 어려운 마지막 숙제가 기다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래농업을 위해서는 첨단연구와 현장연구가 똑같이 중요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농업 고유의 현장연구로는 연구비를 확보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져 버렸다. 논문과 특허 중심의 성과관리체계와 현장 홀대 풍조는 농업 연구자들이 현장을 떠나 실험실로만 향하게 하였다. 농업의 융합화, 스마트화 추세와 맞물려 농생대 연구가 자연대나 공대 연구와 비슷해질수록 농업 현장연구의 인기는 계속 하락중이다. 

2024년 농업R&D 예산 감액은 농업연구의 탈(脫)현장 경향성을 더욱 확대시킬 것이다. 연구에서 돈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연구인력은 단기간에 육성되지 않기 때문에 한번 무너진 분야의 연구자 생태계를 다시 회복하려면 이전보다 몇 배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한다. 이미 농업 연구인력 중에서 현장 농업인과 소통가능하고 기술적으로 압도하는 전문가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농업연구의 꽃은 농업계 외부에서 개발된 기초원천 기술을 농업현장에 적용하는 현장연구, 응용연구이다. 우수한 연구자들이 실험실에만 머물지 않고 현장으로 향할 수 있도록 예산과 평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스마트농업, 그린바이오, 푸드테크 등의 미래 첨단농업과 관련된 경계성 영역은 산업부, 과기부, 민간 등 비농업영역의 재원과 인재를 적극 유인해야 한다. 그래서 농업 연구예산이 농업 본질을 위한 연구로 더 많이 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햇볕 내리쬐는 여름 한 계절을 온전히 시험포장에서 보낸 현장 연구자의 까맣게 그을린 얼굴 안에서 해맑게 빛나는 눈망울과 하얀 미소 속에 우리 농업의 진정한 미래가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