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1월 23일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회의실에서 가락시장 시장관리운영위원회 산하 '가락시장 개장일 탄력적 운영 검토협의체'가 산지 출하자들과 함께 진행한 2차 회의 모습. 
1월 23일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회의실에서 가락시장 시장관리운영위원회 산하 '가락시장 개장일 탄력적 운영 검토협의체'가 산지 출하자들과 함께 진행한 2차 회의 모습. 

가락시장 주5일제 시범사업 시행을 두고 출하 피해 보상 대책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출하자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정가수의 거래 활성화 등의 대안을 모색해 후속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어서 ‘산지 피해 대책 없는 일방 추진’이라는 논란이 가시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락시장 시장관리운영위원회 산하 ‘가락시장 개장일 탄력적 운영 검토협의체’가 출하자들과 함께 2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입장 차만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3~4월 시범사업 두고 “예정대로 진행” vs “대책 없으면 중단” 팽팽

1월 23일 열린 협의체 제2차 회의에서는 앞으로 남은 3~4월 시범사업 시행 여부를 두고 시장 종사자와 출하자 간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1차 회의와 비슷한 논의 양상이 전개되면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

회의에 참석한 중도매인·하역 대표자들이 “시범사업은 예정대로 추진하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논의를 진행해 나가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피력한 반면 출하자들은 “개장일 감축(경매 미실시)에 따른 출하 피해 대책을 지금이라도 마련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3·4차 시범사업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점을 거듭 요구했다.

시범사업 이후 협의체가 출하자 대표들과 함께 1·2차 시범사업 결과 공유 및 향후 추진 방향 논의를 위해 두 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상반된 입장 차만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등 ‘공전’ 양상을 띠었다.

2차 회의에서도 별다른 합의점이 도출되지 못했는데, 중재에 나선 송정환 위원장(농업제도정책연구소장)이 “3·4차 시범사업에 대해 피해 보상을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대책을 세우고 같이 논의해 남은 시범사업을 준비하되, 공사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세워나가는 것으로 합의를 보면 어떻겠나”라고 갈음하며, 회의를 마무리하는 데 그쳤다. 시범휴업일 요일 변경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동절기 끝나 품질·시세 피해 우려되는데 ‘피해 대책’ 인식마저 엇갈려

게다가 산지에서 요구한 후속 시범사업 시행의 전제 조건인 ‘피해 대책’을 두고 시범사업을 주관하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구상이 출하자들의 인식과 크게 엇갈려 논란은 격화될 전망이다.

출하자들은 시범사업 운영으로 나타나는 피해에 대한 실질적인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동절기에 시행된 1·2차 시범사업과 달리 3~4월에는 오이, 딸기, 애호박 등의 출하물량이 증가해 품질(신선도), 시세 문제 등의 피해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2차 회의에 참석한 차홍석 송탄농협 조합장(농협품목별전국협의회 회장단)은 “오이, 애호박, 딸기 등의 품목에 피해가 예상되는데도 피해 보상은 논의를 안 하고 다른 부분만 집중해 토론한다면 출하자들의 피해는 누가 책임지고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가 예상되는 품목에 대한 피해 대책을 어느 정도 마련한다면, 농민들과 얘기해볼 수는 있다”면서 “어쨌든 피해 농가는 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기본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민수 농협경제지주 제주본부 유통지원단 과장은 “두 차례 회의의 방향이 1·2차 시범휴업에 따른 피해가 없었다는 것인데, 공사의 결과 분석을 보면 물량이 줄어드는 동절기라 표본이 작아 신뢰성이 떨어진다”면서 “후속 시범사업 시기는 출하가 많아지는 시기라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분명한 피해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연호 상주오이협의회 회장(상주원예영농조합법인 대표)도 “새로운 제도의 시행으로 피해자가 발생하는데, 피해 논의를 하지 않고 진행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피해 대책이 없는 시범사업의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서울시공사, 피해 보상 아닌 정가수의 활성화·휴업 요일 변경 등 검토

하지만 서울시공사는 ‘피해 보상’이 아닌 ‘피해 최소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모습이다. 현실적으로 1·2차 시범사업에서 미진한 정가수의 거래를 살려보겠다는 구상이다.

신장식 공사 유통물류혁신단장은 “1·2차 시범사업 결과 산지 피해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막연한 피해 우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측면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금전적인 피해 보상보다는 피해 최소화를 위해 정가수의 거래, 휴업일 요일 변경 등 제도적으로 풀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출하자들이 요구한 피해 대책이 별도로 마련되지 않은 채 후속 시범사업이 추진될 수순으로 보인다. 출하자 입장에서는 피해 대책 요구를 외면하면서 공사 계획대로 강행 추진되고 있다는 인식이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2차 회의 자리에서, 한 출하자 대표는 “이 회의 자체가 (시범사업 추진을 위한) 요식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피해 보상 대책을 수립하는 데에는 ‘피해 추산’이라는 기술적인 측면에다 예산 수반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겹친다. 예산과 추진 의지 등이 담보된 상황에서도 쉽지 않은 부분인데, 서울시공사는 이번 시범사업과 관련한 예산을 수립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1월 26일 복수의 공사 관계자들은 “시범사업 관련 예산은 별도로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출하자들이 지난해 하반기 시범사업 시행에 앞서 피해 대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는데, 공사가 애초부터 이를 검토할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10년 걸려도 못한 정가수의 거래 활성화, 한 달 만에 기반 구축 가능할까

3·4차 시범사업을 앞두고 공사는 정가수의 거래 기반 구축을 위해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 등으로 구성된 TF팀을 운영해 품목별 출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생각이다.

정가수의 거래는 가격 등락이 심한 경매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경매를 통해서가 아니라 ‘가격을 정하고 거래’(정가매매)하거나 ‘상대방을 정해놓고 거래’(수의매매)하는 형태를 말한다. 정가매매는 출하자가 사전에 판매 물량을 도매시장법인(경매사)에 제시하면 경매사가 구매자(중도매인·매매참가인)에게 구매 의사를 물어 거래를 확정하고, 수의매매는 도매법인(경매사)이 출하자와 해당 구매자가 1대1로 가격과 물량을 협상하도록 중재 역할을 맡아 거래가 이뤄진다.

서경남 공사 유통혁신팀장은 “오이, 딸기 등의 품목에 대해 필요하면 중도매인과 경매사 등을 라인업으로 묶어 산지에 보낼 계획”이라면서 “정가수의 기반이 구축되면 시범사업 운영에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매 미실시로 중도매인의 휴업이 보장받는 등의 시범사업 취지를 감안했을 때 생기는 현실 적용 문제를 비롯해 가장 관건으로 보이는 정가수의 거래 가격 형성 문제, 또 산지 홍보 문제까지 이전부터 지적되고 있는 과제들이 산적해 단기간 내 실효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일부 품목에 대한 임시 또는 일회성 대응 차원에 불과할 것”이라는 얘기도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 관계자로부터 나온다. 2012년 도입된 가락시장 정가수의 거래 비중은 그동안 활성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난 현재 10%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2차 회의에서 차홍석 조합장은 “산지에서 정가수의 거래를 제대로 알고 있지도 못한 실정”이라면서 “정가수의 거래 기반을 활성화한 이후에 시범사업을 진행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앞선 1·2차 시범사업 당시 정가수의 거래실적이 미흡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공사 관계자들도 수긍하는 부분이다. aT 도매시장 홈페이지에서 공개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정가수의 실적은 1차 시범사업(2023년 11월 4일) 당시 서울청과를 통해 거래된 품목 1건(방울토마토 물량 351㎏·금액 297만원)이며, 2차(2023년 12월 2일) 역시 서울청과를 통해 3개 품목(포도 12톤·8600만원, 배추 33톤·4700만원, 딸기 3톤·6900만원)이다.

이에 대해 서경남 팀장은 “해당 통계 수치에다 온라인도매시장 실적과 함께 일부 법인에서 휴업일 이후 정산된 실적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시범사업 기간 공식적인 정가수의 거래실적은 1차 116톤·1억4900만원, 2차 191톤·2억2700만원이다”라고 설명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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