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업계 최상위 분류 A업체도 가세

[한국농어민신문 최영진 기자] 

새해 벽두부터 종자기업들이 고추 종자 판매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종자업계 최상위로 분류되는 A업체가 가세하면서 통상가보다 20~30% 하락한 덤핑 수준 가격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기후변화로 고추 품종이 복합내병계로 획일화된 데다 재배면적 감소세가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데, 종자 개발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출혈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는 자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종자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고추 품종 판매경쟁은 어느 때보다 격화됐다. 지역·품종별 차이는 있지만, 통상적인 가격 대비 20~30%가량 낮춰 시판상과 육묘장에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고추 종자 판매경쟁이 유독 심하다. 너 나 할 것 없이 출혈 경쟁에 뛰어들었다”면서 “복합내병계 고추종자 도매단가는 1200립 기준 평균 15만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어느 업체가 20% 인하하면 다른 업체는 25%, 30%로 제시하는 등 출혈경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도 “국내 판로는 한정적인데, 기업은 많아졌다. 개발 없이 유통만 하는 군소기업이 시장에 참여하고자 단가를 낮춘 게 올해 출혈 경쟁의 시작”이라면서 “고추 품종 개발은 기후위기로 인해 복합내병계로 굳어졌고, 고령화 등으로 고추 재배면적은 줄어들고 있어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종자 기업으로선 고추를 포기하기 어려운데, 매출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대체재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종자기업 난립·재배면적 감소로 경쟁 심한데 A업체가 ‘불 지펴’

실제 종자 기업이 난립하고 있는 데 반해 고추 재배면적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국립종자원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종자 기업은 2143개, 재배면적은 2만9770ha으로 집계됐다. 2020년 대비 종자 기업(1625개)은 증가하고, 재배면적(3만1146ha)은 줄어들었다. 전체 종자 매출에서 고추 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 20%(552억원·한국종자협회)로 큰 변동이 없었다. 채소 종자 가운데 가장 큰 고추 종자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기업들의 출혈 경쟁이 심화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출혈 경쟁이 심화된 원인으로 종자 업계는 A사를 지목한다. 시장 진입을 희망한 군소업체들이 먼저 저가경쟁에 나섰지만, 경쟁에 불을 지핀 것은 A사라는 것이다. A사는 농약과 비료에 비해 종자사업이 부진하다고 판단, 앞서 일부 인력을 정리하고 올해 설정한 매출과 반품률 등의 목표치 대비 실적이 낮을 경우 또다시 칼바람을 예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A사는 매출액의 20% 가량을 고추 종자에서 거둬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B업체 관계자는 “A사는 비료나 작물보호제 등의 사업도 영위하고 있지만 유독 종자 분야에만 야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인력 재편 등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한해 종자 사업의 시작이자 주요 품종인 고추 판매로 목표를 일부 달성하기 위해 적극 나서는 것 같다. 이렇게 큰 업체가 단가를 크게 낮추면 다른 기업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출혈경쟁으로 ‘신제품 개발동력’ 줄면 품종 선택지 감소 등 농가 피해

문제는 이런 출혈경쟁이 향후 농가 피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단기적으로는 도매 단가 감소가 소매 단가 인하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결국 종자 기업의 개발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일각에선 덤핑 제품이 농가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내놓고 있다. 

C업체 관계자는 “고추 도매 단가인하가 소매가 인하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상식상의 의견”이라면서 “출혈 경쟁 과정에서 유통기한이 거의 다 된 종자를 판매하는 기업이 있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D업체 관계자는 “종자 기업도 이익이 나야 개발을 하는데, 덤핑을 통한 출혈 경쟁은 이런 흐름을 방해하는 시장교란에 불과하다”면서 “신제품 개발 동력이 줄어들므로, 종자 기업은 유통사로 전락하고 농민들의 품종 선택 폭은 좁아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영진 기자 choiy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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