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우정수 기자] 

언젠가부터 정부에서 꺼내는 ‘물가안정’이란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참 불편해진다. 직접 농사짓지 않는 나도 이런데, 농업인들의 속은 오죽할까 싶다.

정부가 연초부터 물가안정을 위해 농축수산물 할인지원 등에 물가관리 대응예산 10조8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지난해 기상악화 등으로 생산량이 극감해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사과와 같은 과일을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과일가격 안정을 위해 수입과일을 더 싸게 들여올 수 있도록 역대 최고 수준의 할당관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수입 과일 21종에 대한 관세를 없애거나 깎아 상반기 중에 30만 톤을 공급하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그야말로 월급 빼고는 오르지 않은 것을 찾기가 더 힘든 고 물가 시대에 살고 있는 직장인 입장에서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인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마음이 이렇게 불편한건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으로 겪게 될 농업인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서일 거다.

물가안정을 위한 화살은 언제나 농업인들에게 향해왔다. 이유가 어떻든 농산물 가격이 오르기만 하면 해당 품목과 이를 생산하는 농업인들은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알고 보면 농업인들이 오히려 피해자인데도 말이다. 정부가 최근 물가 상승을 이야기할 때마다 언급하는 사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에는 이상기후와 태풍 등의 영향으로 전국 산지의 사과 수확량이 전년 대비 30% 이상 감소했다. 사과 주스 등 가공용으로 사용할 비 상품과마저 없을 정도였으니, 가격이 오르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하지만 사과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사과농가들이 돈을 번 것은 아니다. 사과를 출하해서 벌어들인 수익만큼이나 태풍 등의 피해로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한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물론 정상적으로 사과를 생산해 고소득을 올리게 된 농가들도 있다. 이런 농가들은 이상기후와 태풍이 몰아치는 난리 속에서도 무사히 사과를 생산해 낸 만큼 이들은 이들대로 칭찬 받아야 마땅하다.

이번처럼 정부는 물가가 오를 때마다 농산물 할인지원, 비축농산물 방출, 할당관세 추진 등을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이런 정책의 영향으로 해당 품목이나 관련 품목 가격이 하락하게 되고, 그렇지 않아도 피해를 본 농가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물가안정 정책이 농가 피해로 이어지는 상황은 어느새 공식처럼 자리 잡고 말았다.

물론 정부 입장에선 가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농산물 가격 상승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농산물 가격만 잡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마냥 농업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정책을 쏟아내는 것은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 그보다 이상기후에도 농업인들이 피해를 최소화하며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생산·공급할 수 있는 기반에 투자하는 게 농가는 물론, 소비자에게도 훨씬 도움 되는 방안일 것이다. 올해는 ‘정부가 그래도 농업인, 농업·농촌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얘기를 한 번 쯤은 들어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우정수 유통팀 기자 woojs@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