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 지역순환경제센터장

[한국농어민신문]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하는 ‘거버넌스’
남성들만 회의 진행하는 모습 아닌
지역주민 누구라도 함께하는 자리 돼야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 지원에 관한 법률」이 2024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률은 그동안 광역과 기초지자체 단위 공간계획에서 읍·면 공간계획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농촌 난개발과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 삶터·일터·쉼터로서 농촌다움을 회복하고 국토균형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법률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농촌특화지구'와 '주민협정'이다. 농촌특화지구란 농촌공간을 효율적으로 개발·이용·보전하거나, 삶터·일터·쉼터로서 농촌 기능을 재생·증진하기 위하여 지정하는 지구를 말한다. 주민협정은 농촌특화지구 내 주민, 토지소유자, 그 밖에 해당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하는 자가 농촌특화지구의 지정, 개발 및 관리에 필요한 주민자치규약 등을 마련·이행하기 위해 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말한다.

농촌특화지구 지정 및 개발, 관리를 위해 주민참여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우선 기본계획단계에서 주민설명과 의견수렴을 명시하였고, 시행계획단계에서는 주민제안과 주민협정 등 주민결정권을 강화하였다. 주민과 토지소유자는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 시행계획 수립 과정에서 농촌특화지구 지정목적 및 필요성, 위치 및 면적, 지구의 정비 및 관리방향, 주민협정을 체결할 경우 해당 내용, 기대효과, 주민 의견수렴 결과 및 계획수립권자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을 제출할 수 있고, 계획수립권자는 제안받은 내용의 처리 결과를 제안자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주민제안의 주체는 이해관계자를 포함하는 주민이며, 주민협정의 주체 역시 농촌특화지구 주민, 토지소유자, 조례로 정하는 자 등(‘주민 등’)으로 제시하고 있다, 주민협정 체결자는 주민협정의 체결 및 추진을 위한 자율적 ‘주민대표기구’로서 주민협의회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였다. 주민협의회는 주민협정서의 작성, 주민협정의 이행 및 관리, 주민협정의 변경 및 폐지, 그 밖에 주민협정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주민협의체는 읍면 농촌사회를 대표하는 ‘거버넌스’이다. 농촌정책에서 ‘거버넌스’는 농촌재생의 주체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속적인 인구감소로 공동화되고 있는 읍면이지만, 터줏대감인 어른들이 계시고, 귀농귀촌인, 청년과 아동, 결혼이주여성과 외국인노동자까지 농촌사회 구성원은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읍면에 농촌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모두 참여하여, 지역과제 해결방안을 논의하고 협력하여 농촌재생을 위해 활동하는 ‘거버넌스’가 있었던가?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 전반에서 ‘거버넌스’라는 용어가 보편화되었고, 국어사전에서도 거버넌스를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주어진 자원 제약하에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투명하게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제반 장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외에 거버넌스를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들이 공공 현안에 대한 정책결정과 수행에 참여하는 과정으로 정의하거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다양한 집단들이 공공정책의 공동생산과 공동집행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거버넌스’를 설명하는 내용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여 공동현안을 함께 결정하고 집행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얼마 전 ○○면 마을동계(洞契)에 참여해 보았다. A마을은 부녀회원들이 아침부터 마을회관에 모여 주민들이 함께 먹을 점심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청년회원들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모셔오거나, 눈이 내린 마을회관 앞을 치우고 있었다. 회의시간이 되자 이장이 지난 한 해 동안 마을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하고, 면장은 새해 새로운 행정소식을 주민들에게 전달한다. 물론 모든 마을동계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니다. 어느 마을은 마을회관에 남성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여성들은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마치고,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혹시 이런 마을모습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을보다 더 다양한 주민들로 구성된 읍면 지역사회에는 ‘마을동계’가 없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읍면살이를 돌아보며 평가하고 새해 살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읍면단위 거버넌스가 부재한 것이다. 지속적인 인구감소로 공동화되고 있는 읍면 농촌사회에서 지역사회를 대표하여 지역 공동현안을 논의하여 결정하고, 함께 실행할 주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다. 2024년 한해는 읍면 지역주민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농촌살이’를 이야기하는 청룡의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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