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農)과 도(都)의 경계에서

[한국농어민신문] 

결국, 마을이 매력적이고 주민이 행복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이야기다. 피할 수 없는 인구감소의 국가적 현실을 받아들이되 조금은 다른 관점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ㅣ윤요왕 전 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제 지역소멸, 지역과소화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농촌의 현실인 듯하다. 전국 출산율 0.7명이(통계청 발표 : ‘2023년 6월 인구동향’) 이를 말해주고 있다. 서울도 인구가 줄어든다는 기사가 나오는 걸 보니 지방 특히 농촌은 어떠할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여러 가지 자구책을 강구하고는 있지만 힘에 부쳐보인다. 절대인구가 감소하고 모든 인프라가 서울을 위시한 대도시에 집중되어있는 현실을 감안 할 때 농촌지역의 지역과소화 문제를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 할 것 같다. 도시인구를 이주시킨다거나 대학생 주소 이전, 이주노동자 정책 등으로 지방인구를 일시적으로 또는 행정서류상으로 조금 늘릴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할 미래를 맞고 있는 것이다.

다만, 농촌의 모든 문제를 인구감소로만 정의내리는 전제와 가정을 조금 뒤집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속담처럼 농촌인구의 과소화를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다른 관점으로 농업·농촌·농민을 위한 전략을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고령화된 노인들의 돌봄문제, 폐교가 늘어가는 작은학교, 지역에 남고싶은 청년들의 진로고민 등 현재 살고있는 ‘농촌사람들’을 위한 행복한 마을만들기로 접근해보자는 것이다. 일본 어느 농촌마을의 슬로건이 ‘과소도 싫지만 과밀도 싫다’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만약에 몇 십명 사는 작은농촌마을에 대규모 전원단지가 들어와 수십명, 수백명이 갑자기 느는 것은 농촌마을을 살리는 길인가 곱씹어 봐야한다.

최근에 내가 살고 있는 면에 청년모임이 하나 생겼다. 주로 20대 초중반의 청년들 20여명이다. 농사를 막 시작한 청년, 공익근무를 하는 청년, 시내로 대학이나 직장을 다니는 청년 등 현재 직업도 다양하다. 이들은 이 지역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녔고 마을에 대한 애정도 많은 것이 공통점이다. 그러나 청년들은 함께 만나 웃고 이야기하고 놀 수 있는 시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이에 이 청년들과 배움 여행도 가고 연말 송년 파티도 하고 다음 주는 ‘빈집 작당모의’ 워크숍도 한다. ‘빈집 작당모의’ 프로젝트는 지역의 청년들을 위한 자유로운 아지트이면서 외부인에게는 풍광 멋진 쉼과 모임의 공간으로 제공되는 시골빈집 프로젝트다. ‘마을의 청소년을 지역의 청년으로 만들자’라는 목표로 청청마을학교도 기획하고 있다. 단순 인구 증가 차원에서 이들을 붙잡아두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도시의 청년들만 바라보고, 정작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진로에 대한 길잡이는 해주고 있었는지 반성이 되었다.

이렇게 관계하고 이웃하다 보면 지금 정부 차원에서 정책사업으로 진행되는 진짜 생활인구(관계인구)와 고향사랑기부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을까? 그렇게 될 때 두 정책사업들도 활성화되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농촌마을 생활인구’로 확장될 수 있을거라 기대하게 된다. 우리마을은 오래전부터 도시아이들이 1년간 생활하고 공부하는 농촌유학을 하고 있다. 이 아이들 그리고 그 부모들부터 우리마을의 관계주민으로 만나고 싶다. 사업이나 기부나 정책이 아닌 생활과 관계 속에서 경험한 찐한 만남과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마을이 매력적이고 주민이 행복한 일부터 시작하자는 이야기다. 피할 수 없는 인구감소의 국가적 현실을 받아들이되 조금은 다른 관점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자칫 1사1촌이나 농촌체험의 전철을 밟지는 말자. 마을주민들로부터 시작해 주민들이 주체로 서고 주민들이 행복한 마을을 만드는 것으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인구가 적어 모든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현실을 한탄만 하고 있어서는 새로운 인구증가도 어렵고 살고있는 주민들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지난주부터 우리마을(5개리)이 생긴 후 처음으로 면의 주민자치센터프로그램이 개설되었다. 그동안 왜 못했을까? 주민자치위원이 되고 처음으로 조심스레 제안한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현실이 되었다. 탁구 강좌에 아동반, 성인반 두 개가 생겼고 참여하는 주민들의 얼굴에 웃음꽃과 생기가 도는 걸 보니 망설였던 주민자치위원이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렵게 복잡하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작은 공간을 만들고 모임을 만들고 주민들이 스스로 돌보고 행복한 마을살이를 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이었다. 거대한 정책과 대규모 예산으로 농촌지역에 도시민을 이주시키는 정책적 전략부터 전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마을단위의 기초가 죽는다면 면과 군, 도와 국가는 생존할 수 없다. 삶의 시작이자 터전인 마을과 동네, 면과 군, 동과 구를 먼저 살려야 하는 까닭이다. 그들이 죽는다면 나라도 따라 죽는다. 동넹가 사라지면 국가는 당연히 사라진다.’ - 박명림 연세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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