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농정전문기자

세상은 인간과 자연이 깊은 상호 유기적 관계를 맺으면서 순환의 질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물질순환이 깨지게 되면 그 질서는 붕괴되고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칼 마르크스는 이를 ‘신진(물질) 대사 균열(metabolic rif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자본주의가 토양과 자원을 지속 불가능한 방식으로 착취함으로써 신진대사에 회복 불가능한 균열을 발생시킨다고 했다. 오늘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위기, 생태위기는 신진대사 균열의 과정이자 결과이다.

사실 산업사회 이전에는 순환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농업으로 땅과 자연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어왔다. 전통농업은 농사를 지어서 나오는 식량으로 인간과 가축이 생활하고, 인분과 축분은 다시 퇴비가 되어 땅으로 돌아가는, 물질의 막힘없는 순환원리가 요체다.

일찍이 미국 농림부 토양관리국장을 역임한 프랭클린 H. 킹이 100여 년 전 ‘4천년의 농부’라는 책에서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의 전통농업을 살펴보고 극찬한 것은 유명하다.

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서구 근대문명의 ‘지속불가능성’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물질의 막힘없는 순환을 근본 토대로 하는 영속적인 생존·생활방식, 즉 동아시아 특유의 친환경적 농사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농본주의’를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자연계의 순환원리로 농사를 짓는 전통농업은 산업화 진전에 따라 화학농법과 화석에너지, 시설에 의존하는 농업으로 대체됐다. 현대 농업은 신진대사의 균열을 특징으로 하며, 자연과 인간의 분리(도시와 농촌의 분리), 경종과 축산의 분리를 초래했다. 오늘날 GMO(유전자변형생물), 스마트팜, 식물공장은 그 흐름의 결정판이다.

이러한 공업식 농업의 확산 속에서, 사람과 땅, 생태환경을 살리는 대안으로 전통농업의 순환원리를 승계한 유기농업의 역할은 중요하다. 물질순환과 생명의 원리야말로 신진대사의 균열을 치유하고 생태환경을 살리는 기후, 환경위기 시대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유기농업은 단순히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농법만을 뜻하지 않는다.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의 정의에 따르면, 유기농업은 토양, 생태계, 그리고 인간의 건강을 유지하는 생산시스템이다. 유기농업은 지역에 맞는 생태순환과 생물다양성을 기반으로 한다.

IFOAM은 유기농업의 ‘기본기준’으로 4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 첫째는 ‘건강의 원칙’이다. 유기농업은 지속적이어야 하고, 토양, 식물, 동물, 인간, 지구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로서 유기농업이 이들의 건강을 증진시켜야 한다.

둘째는 ‘생태의 원칙’이다. 유기농업은 살아있는 생태계와 순환에 기초해 이뤄져야 하며, 셍태계를 유지하도록 도와야 한다.

셋째는 ‘공정의 원칙’이다. 유기농업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다른 생명 사이의 관계에서 평등, 존중, 정의를 바탕으로 공정하게 관리된다.

넷째는 ‘배려의 원칙’이다. 유기농업은 현재와 미래세대, 환경과 건강을 보장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 유기농업에서 과학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쳐 검증된 토착적이고 전통적인 지식을 중시한다. 특히 유전공학 같이 예측 불가능한 기술은 거부된다.

이처럼 유기농업은 순환원리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사이의 균열과 분단, 생태환경 파괴를 바로잡는 삶의 방식이다.

헌데, 최근 유기농업의 이런 가치와 정신을 몰각한 입법 시도가 비난을 사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스마트농업으로 수경재배한 농산물도 유기 인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으로 ‘스마트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수경재배는 토양이 아니라 시설의 고형배지나 수경에서 배양액으로 생산하는, 전형적인 공장식 농업이다. 유기농업의 개념 상 토양생태계와 순환이 없는 수경재배가 유기농이 될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유기농업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나올 수 없는 법안이 버젓이 발의됐다는 게 황당하다.

이번 입법 시도는 단순히 유기농업에 대한 몰이해로 치부하기엔 너무 천박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유기농업의 가치와 근간을 흔드는 개정안은 폐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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