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13일부로 잔류허용기준 완화

[한국농어민신문 최영진 기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13일부로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EU, 영국, 일본보다 규제가 강하지만 비의도적 농가에 한해 잔류농약 검출기준(MRL)을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완화하는 것이 골자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13일부로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EU, 영국, 일본보다 규제가 강하지만 비의도적 농가에 한해 잔류농약 검출기준(MRL)을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완화하는 것이 골자다. 

생물다양성을 증진하고 토양생태계를 보전하며 농산물을 생산하는 친환경농업. 기후위기 극복에 기여하는 등 우리 농업이 가야 할 ‘미래 농업’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확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친환경인증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보니 농가들이 억울하게 인증을 취소당하거나 인증 자체를 포기했던 것이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13일부로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을 개선했다. 이를 통해 국내 친환경인증 규정을 세계적 수준에 맞춰 운영하고, 보다 저렴하게 친환경농산물을 접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다. 

#‘농약 불검출’ 규정 손질농가‧소비자 상생 도모

EU·일본·영국 등은 잔류농약 규정 없고
미국은 일반 농산물 MRL
 5%까지 허용

이번에 개정된 시행규칙은 친환경농산물 농약 잔류허용기준(MRL)을 합리적으로 개선한 것이 핵심이다. ‘농약 불검출’이었던 기존 규정을 비의도적이라면 농약이 농산물에서 일부 검출되더라도 농가의 인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농약 검출량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고시한 잔류허용기준(MRL)의 5% 이하거나, MRL 기준이 없는 농산물은 1kg 당 0.01mg 이하인 경우에 한해서다. 잔류허용기준(MRL)은 각 식품의 일일 소비량과 체중을 고려했을 때 사람이 일생동안 섭취해도 건강에 이상 없는 수준으로 설정된다.

이번 개정은 당초 제도 취지와 배치되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존의 ‘농약 무검출’이라는 규정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보니 생산과 소비를 촉진하자는 제도 목표와 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드론 등 항공 방제가 농업 현장에 일반화되면서 뿌리지 않은 농약이 소량 검출됨에 따라 억울하게 친환경인증을 취소 당하는 농가가 많았다.

이로 인해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 친환경농업을 희망하는 농가는 감소하고, 기존 농가는 인증을 박탈 당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실제로 2020년 5만9249가구였던 친환경농가는 점차 줄어 올해 하반기 기준 4만8383가구로 쪼그라들었다. 농가 감소로 친환경농산물 판매가도 높아지면서 소비자도 이를 구매하기 부담스러웠다. 농가는 농가대로,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애로가 있다보니 시행규칙을 개정하게 된 것이다. 

얼핏 보면 이번 개정으로 식품 안전과 관한 규정이 약화된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도 아니다. 기존 규정이 지나칠 정도로 엄격했을 뿐, 이번에 개정된 친환경농산물 잔류농약 검출기준도 전 세계적으로 강한 편이기 때문이다. 친환경농업 선진국인 유럽연합(EU), 영국, 일본의 경우 우리와 같이 별도의 친환경농산물 잔류농약 검출기준이 없다. 친환경농산물이라고 해서 일반농산물보다 농약이 없거나 적어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나마 친환경농업 선진국 중에선 미국이 친환경농산물 잔류농약 검출기준을 두고 있으나 일반 농산물 MRL의 5%까지는 허용하고 있다. 이번에 개정된 우리의 친환경농산물 농약 잔류허용기준(MRL)과 같은 수준이다. 해외 기준으로는 일찍이 친환경농산물로 인정받아야 했던 국내 농산물들이 이제야 동일선상에 놓이게 된 셈이다. 

시행규칙을 개정한 이정석 농식품부 친환경농업과장은 “기존 친환경인증제 잔류농약 규정은 세계적 기준과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까다로워서 우리 농가들에게 불합리한 부분이 있던 게 사실”이라면서 “이번 개편으로 친환경농업인은 뿌리지 않은 농약이 흘러오는 등 비산에 대한 우려없이 친환경 농업을 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소비자는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친환경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환경보전’ 가치 강화…농가 친환경 역할 명시

농약 불검출 벗어나 농사과정 전체 관리
‘비의도적 농약 오염방지’ 의무화 하고
농가 환경보전 역할 강조 규정도 신설


이번 시행규칙 개정의 또 다른 핵심은 농약검출이라는 결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농사 과정 전체를 관리하자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농약이 조금이라도 검출되면 인증을 박탈하는 ‘패널티’를 완화하는 대신, 농가가 비의도적 농약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친환경인증 농가는 인근 관행농업의 재배포장으로부터의 농약 흩날림, 관개‧배수 등 농업용수나 그 밖의 농업자재 등으로 인한 오염과 같은 비의도적 오염을 방지해야 한다. 

이와 연계해 유기농업자재와 관련한 규정도 강화했다. 성분 미흡, 불량 원료 등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유기농업자재라면 제조된 시기 구분 없이 전량 거둬들이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불량한 자재로 인한 농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기존에는 업체가 행정처분을 받은 날짜에 생산된 자재만 회수하면 돼, 다른 날짜에 생산된 유기농업자재는 농가들이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아울러 농가의 환경보전 역할을 강조하는 규정도 신설했다. 친환경농업의 본래 가치인 ‘환경보전’에 입각해 농법의 경작원칙을 명시한 것이다. 토양비옥도의 유지, 생물다양성의 증진, 천적서식지의 제공, 자연의 순환 등 농업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보전하고 환경오염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농식품부는 고시 개정을 통해선 농약 검사 규정도 변경할 계획이다. 친환경 농가라면 매년 1회 이상씩 하던 농약 검사를 농가별 친환경농업기여도와 위험도에 따른 고위험 집중검사로 개편한다. △신규 친환경 농가 혹은 과거 농약 검출 이력 농가 △농자재 과다 구매 농가 △일반 농법 병행 농가가 대상이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행정절차를 줄이는 한편, 관리‧통제가 필요한 농가를 대상으로는 단속 그립을 강하게 쥔다는 계획이다. 
 


#“농가‧소비자 상생하는 개정안 환영”
“생태계 회복 가치 찾아…농가-소비자 상생 활로 기대”

이번 시행규칙 개정 과정에 참여해 온 친환경농업단체와 소비자단체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전했다. 이들은 지난 5월부터 국내의 불합리한 친환경인증제를 개선하기 위해 국회 토론회와 설명회를 개최, 농식품부와 함께 논의를 거듭해 왔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와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는 지난 13일 공동으로 성명서를 내고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민관의 협력과 특히 소비자단체들의 이해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로서 이를 매우 환영 하는 바”라며 “이와 같은 개선을 통해 친환경농업이 국민들에게 한단계 더 다가가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친환경농업협회는 “이번에 개정된 시행규칙으로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마련돼 안정적인 영농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면서 “농가는 이를 위해 비의도적 오염방지를 위한 노력을 수반하고 이를 통해 농업환경 보전 효과를 높이도록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녹색소비자연대는 “환경보존과 생태계 회복이라는 친환경농업 본연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자들에게는 안전성도 담보할 수 있는 이번 개선안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비의도적 오염으로 인한 생산 현장의 어려움을 소비자들이 십분 이해하고 소비자들은 개정이 되더라도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협조하는 상생이 이번 개정안의 밑바탕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농약의 유무’에 집중됐던 친환경농산물의 기준과 제도가 국제기준과 같이 됨으로써 친환경농업이 가진 원형의 가치인 생태계를 회복해 가는 상생의 길을 걷게 됐다”며 “이를 시작으로 우리 농산물이 친환경농산물로 전환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친환경농산물이 소비자의 건강한 먹거리로서만이 아니라, 소비자의 삶터의 건강성도 회복시키는 씨앗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인터뷰/이정석 친환경농업과장
“정부-생산자-소비자 협의 결실농가 판로·직불금 확대 힘쓸 것”

이정석 농식품부 친환경농업과장
이정석 농식품부 친환경농업과장

“이번 시행규칙 개정은 정부와 생산자단체, 소비자단체가 협의해 만들어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지난 5월부터 생산자, 소비자 단체와 지속적으로 숙의과정을 거친 덕분에 시행규칙을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다. 내년에는 소비자들의 친환경농업 접점을 늘리고 농가엔 판로‧직불금지급을 확대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우선 소비자들에게는 친환경농업의 환경보전적 기능을 인지할 수 있도록 생산자와의 교류를 활성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가족단위로 친환경농산물을 교육‧체험‧소비할 수 있는 복합공간을 현재 8개소에서 2027년까지 12개소로 확대한다. 가격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대형마트‧온라인 매장에서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또 친환경 인증과 관련해 명예심사관으로 소비자를 포함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생산자를 위해선 친환경농업직불제 예산과 판로 확대를 가장 신경 쓸 생각이다. 이를 통해 친환경농업으로 유입을 유도하고, 환경농업을 하는 비인증 농가에 대해서 어떻게 보상할지 고민하겠다. 아울러 농산물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지방소멸이 우려되는 지역의 초등학교나 어린이집에도 친환경급식을 시행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또 민간 판로 확대를 위해 친환경농산물의 가격, 생산량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유통정보센터’를 구축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이마트나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상품기획가(MD)들이 매장 내 친환경농산물 판매관을 구상할 때 참고하도록 돕겠다.”

최영진 기자 choiyj@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